승부조작 파문으로 한국 축구계가 시끄럽다. 전(前) 국가대표 선수부터, 현(現) K리그 감독까지 승부조작과 관련해 구속됐다. 마치 양파처럼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며, 소위 승부조작의 ‘몸통’논란도 거세다. 처음엔 일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몸통’으로 지적되었다가, 최성국 선수가 브로커 역할까지 가담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새로운 ‘몸통’으로 떠올랐다. 또 며칠이 지나자 이번엔 조폭 또는 국제 조직이 ‘몸통’이란다.

그러나 ‘몸통’이란 무엇인가. 몸통은 내장기관이 있는 곳이다. 핵심이다. 코어(core)다. 생물체가 팔다리가 없어지면 불편할지언정 생존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몸통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생물체는 없다. 그러니 만약 승부조작의 진짜 ‘몸통’이 일부 선수나 조폭이라면, 그 ‘몸통’으로 거론된 일부가 없어졌을 때, 승부조작 같은 일은 깨끗이 근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몇몇 선수들을 영구 추방하고, 승부조작과 관련된 조폭을 구속 입건하면 축구계의 승부조작은 뿌리 뽑힐 것인가.


과연 승부조작의 몸통이 몇몇 '개체'들로 한정될 수 있을까. 사진은 @스포츠동아


승부조작, 진짜 몸통을 찾아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없다지만 털었더니 먼지‘만’ 나는 게 이 바닥이다. 게다가 축구계의 승부조작은 갑자기 터진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1998년에 차범근 감독이 K리그에 승부조작 행위가 있다는 폭로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축구협회는 강하게 반발했고, 차범근 감독에게 5년간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의 말이 사실임이 밝혀졌다. K3리그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났던 적도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뿌리 깊은 종양도 쉽게 뽑히지 않는다. 선수 몇 명은 작은 먼지일 뿐이다.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는 조폭들도 조금 큰 먼지에 불과하다. 크고 작은 먼지를 털어봤자, 먼지가 생기는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먼지는 다시 생긴다. 승부조작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짜 ‘몸통’을 찾아내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 결코 선수 몇 명이나 조폭들은 ‘몸통’ 이 될 수 없다.

나는 이번 승부조작이 단순히 몇몇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 축구계 전반,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투영되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인 중 한 명이 얼마 전까지 축구를 했었다. 취미로서의 축구가 아니라, 장래 직업으로서의 축구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 대학교 1학년까지 했으니, 근 10년을 공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는 10년간, 6곳의 학교를 다녔다(축구부원들은 주전경쟁, 축구부 폐부 등의 이유로 전학이 잦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가 6곳의 학교를 다니며 만난 수백명의 축구부원 중 지금 축구선수로 성공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축구로 성공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물론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들도 이렇게 어려운 길을 뚫었으니 봐주자!’ 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축구로 성공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작용에 대해 말하려 한다.

공은 둥글다. 그러나 우리나라 축구계에서 공은 둥글지 않다.



축구계의 뿌리 깊은 비리

중‧고등학교 축구경기를 구경하면 의아할 때가 있다. 별 의미 없는 연습경기인데도, 학교 스탠드에 선수들의 학부모가 모여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다. 소위 ‘얼굴도장’ 때문이다. 아이의 축구 실력이 매우 출중하다면 별개의 이야기지만, 감독도 사람인지라 비슷한 실력의 아이라면, 경기를 자주 찾아와 얼굴도장을 찍는 부모의 아이를 주전으로 내세우기 마련이다. 당연히 주전을 차지한 아이는 스카우트에게 어필할 기회가 많아지고, 우수한 상급학교에 진학할 기회가 늘어나게 된다. 얼굴도장은 단순히 경기관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감독에게 직접 돈을 찔러주는 수단도 자주 쓰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감독에게 술을 사주거나, 아이들에게 회식을 열어주는 수단이 자주 쓰인다. 말이 ‘술’ 이나 ‘회식’ 이지 축구팀에게 고기라도 한 번 사줄라치면 백만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이러한 부모의 바짓바람만으로 축구선수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축구계는 좁다. 어지간한 중‧고‧대학팀의 감독끼리는 안면을 트고 있는 사이다. 때문에 선수의 실력 ‘외’ 의 요소가 상급학교 선발에 영향을 미칠 때가 많다. 올해 6월 서울의 유명 고등학교 교사가 체육특기생 대학 입학을 돕는 조건으로 돈을 받아 입건되었다. 실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프로는 대학에서, 대학은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는 중학교에게서 선수를 수급 받는다. 학교 축구부의 감독은 아래로는 좋은 선수를 뽑아 대회 실적을 내야하고, 위로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좋은 학교에 진학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서 인맥‧돈 등의 요소가 작용한다. 심지어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해당 학교에 진학시키는 조건으로 기량이 떨어지는(그러나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이 뛰어난) 선수를 함께 받아달라는 ‘끼워 팔기’ 도 종종 행해진다. 부모 역시 자식의 실력이 ‘프로’ 선수가 되기에는 모자람을 알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은 중요하기에, 일단 자식을 대학까지 진학시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감독의 ‘정치력’은 선수 수급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프레시안> 에 “승부조작 안 해본 축구선수, 손들어 봐!” 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송고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사실이다. 축구계가 좁고, 감독끼리 얼굴을 아는 사이다보니, 중·고등학교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나는 일은 매우 흔하다. 일반적으로 축구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선 전국대회 8강 이상의 실적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대회실적 나눠먹기’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심판 매수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결국 정희준 교수의 글 제목처럼, 중·고등학교 때 승부조작을 해보지 않고 프로가 되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승부조작 가담자들을 발본색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와 축구계의 뿌리깊은 악습 역시 되돌아봐야 한다. 사진은 @ytn



승부조작의 진짜 몸통, 그것은 축구계와 우리 사회

이처럼 축구선수를 만드는 것은 실력만이 아니다. 일종의 ‘정치력’과 ‘경제력’ 이 작용한다. 말이 정치력이고 경제력이지 결국은 ‘비리’이다. 특출한 몇몇에 속하지 않고서는 결국 사회적으로 조장된 이 비리를 통해 상급학교, 나아가 프로까지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축구선수를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합숙을 한다. 일정 이상의 수업을 듣게 되어 있지만 그것은 형식적일 뿐이고, 사실상 어떠한 공교육도 받지 못한다. 최소한의 상식과 윤리조차 배우지 못한 채, 그들은 ‘승리’를 위한 논리와, ‘진학’을 위한 비리만 배우게 된다. 필자의 지인은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축구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최소한의 윤리 교육이 동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승부조작의 진짜 책임이 선수에게만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매년 심판 매수, 금품 수수 등의 비리가 터지는 현실에서, ‘윗분’ 들이 축구계의 낡은 병폐를 몰랐을 리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고, 축구계 ‘윗분’ 들은 몇몇 선수들을 희생양으로 이 위기를 덮으려 한다. 그러나 승부조작의 진짜 몸통은 저 선수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 한다, 능력이 안 되면 돈을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공부 가르칠 시간 없다 운동이나 해라> 를 끊임없이 강요한 축구계 전부, 아니 우리 사회 전부다. 저 선수들은 승부조작이란 죄를 저지른 범죄자인 동시에, 축구계 최대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