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버스를 타러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비와도 걱정이다. 몇 걸음 사이에 몽땅 젖어버리는 옷과 신발, 그리고 마음. 아무래도 여름엔 집 안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한 입 베어 무는 게 제격이다. 빨리 지나가 줬으면 하는 불청객 여름날, 나가긴 싫고 집에 있긴 심심한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핵폭탄급 웃음과 질질 짜게 만드는 감동으로 여기가 더운 건지 추운 건지 심지어 당신이 누군지도 잊게 만들어버릴 노도철 PD표 시트콤이다. <두근두근 체인지>(이하 ‘두두체’)와 <안녕 프란체스카>(이하 ‘프란체스카’), 그리고 <소울메이트>까지 입맛 따라 만나보시라!
 


‘얼꽝’ 고2 여고생 삼총사의 좌충우돌 시트콤 <두근두근체인지> - 조정린, 박슬기, 홍지영, 정시아, 김지우, 김동윤 등 출연
흡혈귀보다 더 흡혈귀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의 보고서 <안녕 프란체스카> - 심혜진, 박슬기, 이두일, 정려원, 이켠, 박희진 등 출연
 
여섯 남녀 커플이 보여주는 21세기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 <소울메이트> - 신동욱, 이수경, 최필립, 사강, 장미인애, 료헤이 등 출연



판타지적 소재와 현실의 콜라주, 한국 시트콤의 새 장을 열었다!

참신함, B급 정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지 않음. 노도철PD의 시트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들이다. 비현실적인 소재와 황당한 설정들이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철저히 현실적인 시선들이 결코 가볍게만 시트콤을 감상할 수는 없게 한다.

‘두두체’는 4시간 동안 예쁜 모습으로 변신시켜주는 샴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여고생 ‘모두’를 통해 현실의 외모지상주의를 재구성한다. ‘프란체스카’에 등장하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뱀파이어들은 고독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 고립된 주인공 ‘두일’과 가족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가족의 의미를 되짚는다. ‘소울메이트’도 유사한 방식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다는 비현실적 개념 ‘소울메이트’를 통해 21세기 현실 남녀의 사랑, 연애, 결혼관을 관찰한다.

노도철표 시트콤은 하이킥류의 ‘대가족 시트콤’과 논스톱류의 ‘청춘 시트콤’으로 장르화되어 있던 한국 시트콤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왔다. 인물 관계도와 캐릭터 위주로만 구성되어 소소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법칙이었던 한국 시트콤의 상큼한 반란이었다.


안녕 프란체스카 시즌1 엔딩 장면

명품 코믹 연기, 정극보다 진한 감동

시트콤의 기본은 바로 웃음이다. 노도철표 시트콤의 웃음 무기는 일상이 코믹인 4차원 캐릭터다. ‘두두체’에서 자작곡 ‘아라비아 아싸라비아 사루비아’를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불러제끼던 박슬기, 말할 것도 없이 너무 유명한 ‘프란체스카’의 히로인 박희진, 독특한 말투로 극의 웃음을 다 책임지는 ‘소울메이트’의 김미진까지. 쉴새 없이 명품 코믹 연기를 쏟아내는 그들 앞에서 우리는 무방비상태가 된다.

예상하지 못한 카메오들의 등장도 새롭다. 노래만 하는 줄 알았던 국민 가수 이선희가 ‘두두체’에서 의외의 신경질을 분출하는 순간, ‘프란체스카’에서 디자이너 장광효와 건축가 김원철이 어색한 말투로 대화를 나누던 순간, 카리스마의 상징 신해철이 선글라스를 벗고 좀 모자란 ‘앙드레 대교주’로 분하는 순간은 다른 TV프로그램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도 진지한 그들을 보며 키득거리게 만들어 줄만큼 뇌리에 박힌다.

강력한 코미디가 기대한 만큼을 충족시킨다면, 밀려오는 감동의 쓰나미는 충격적인 반전이고 기대하지 않은 서프라이즈다. 가상의 판타지가 끝나는 순간, 마지막 에피소드의 종료를 앞두고 주인공들이 겪는 아픔 속에서 나의 아픔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함께 슬픔에 빠진다. 자신의 외모를 스스로 부정해 본 사람이라면 ‘두두체’의 ‘모두’, 고독함에 무뎌질 정도로 외로움이 익숙했던 사람이라면 ‘프란체스카’의 ‘두일’, 실연의 상처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소울메이트’의 ‘유진’의 슬픔에 함께 눈물 흘릴 것이다.


트콤이 끝난 후, 찾아 듣고 싶은 OST

정주행 완료. 더 이상 남은 에피소드가 없는데 아직도 마지막 장면이, 그 감동이 가시지 않는다면 골방 방문을 추천한다. 지금은 관리되지도 않는 세 시트콤의 공식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에피소드 별로 정리된 OST 목록을 찾을 수 있다.

노도철표 시트콤은 OST의 완성도가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음악 마니아인 노도철 PD가 직접 선곡하는 것으로 유명한 OST 목록은 방영 당시 젊은 층의 MP3 플레이리스트로 고스란히 옮겨지곤 했다. ‘프란체스카’ 시즌1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의 ‘트레블링 보이(Traveling Boy)’나 ‘소울메이트’의 테마 송으로 쓰인 라쎄 린드(Lasse Lindh)의 ‘커먼 쓰루(C'mon Through)’ 등 어느 한 곡 빠뜨릴 수 없는 명곡들은 그 멜로디만으로도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어디 일단 하나 취향 따라 골라 잡아보자. 턱이 빠질 것처럼 웃다가 세상 가장 슬픈 사람처럼 울다 보면 어느새 밝아 온 새 아침이 당신을 부끄럽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