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믿음과 느낄 수 있는 햇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영화 제목 그대로 경상남도 밀양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남편을 잃은 여인, 신애(극중 전도연)가 아들과 함께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밀양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밀양에서 피아노 학원을 개업하고 처음엔 미망인 신애를 그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마을 사람들과도 시간이 흐르면서 적응해 나가게 된다. 그러던 중  아들 준이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아들은 결국 주검으로 돌아온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던 신애는 아들의 죽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다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전도연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으로도 유명한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은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에 빠진 신애가 신앙에 의지하며 극복해보려 하지만 그 마저도 잘 되지 않고 자살을 기도 하는 등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밀양’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깊은 여운을 받을 수 있었던 부분은 극중 전도연, 신애가 자식을 잃음으로써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교회에 찾아가면서부터 이다. 교회에 찾아간 후 그녀는 믿음을 통해 삶의 안식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과거엔 자신이 불행한 처지에 놓였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날 버리지 않아서 행복하다고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위안도 잠깐 뿐 그녀의 마음은 다시 절망과 암흑 속에 빠지고 목사와 관계를 맺으려고 시도하게 되는 등 지독한 외로움에 괴로워한다.


이러한 전도연의 모습은 첫째로, 그저 영화 같지 않았기에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우리의 잔인한 인생은 얼마나 예측이 불허한가.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상처 받고 좌절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세상엔 얼마나 많은가. 세상이 아름답기만 했으면 좋겠는데 여기저기엔 슬프고 부조리한 것들이 널려있다. 이런 사실들은 전도연의 괴로움에 어느 정도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둘째로 전도연에 대해 공감할 수 있었던 더 큰 이유는 바로 전도연이 교회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녀가 결국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극중 송강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송강호는 전도연에게 호감을 느끼는 캐릭터로, 영화 속에서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관객들의 상상력을 요구 하며 끝나버렸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암시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밀양’을 마르크스 철학의 관점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 개념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간단히 풀이하자면 세상이 진보하는 방향으로 변화한 다는 것이 변증법이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과 다르게 오감으로 느껴지는 사실들을 믿는 다는 것이 유물론이므로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적인 개념으로 해석해 보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실천들로, 세상은 발전한다.’ 는 정도로 풀이 될 수 있다.


유물론에 대응되는 개념으로는 ‘관념론’을 들 수 있다. 관념론은 말 그대로 풀이 하여 관념(인간의 생각)을 중시하는 철학의 사유 방식을 가리킨다.

유물론의 대표적인 예는 과학이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사실들을 기초로 하여 개념을 정립하기 때문이다. 관념론의 대표적인 예는 종교다. 우리는 비록 신의 실체나 형체를 알 수 없지만 신을 믿고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영화 ‘밀양’ 속 전도연은 자식을 잃은 극심한 슬픔을 교회에 다니면서 극복해 보려한다. 전도연은 교회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라고 말하며 위로를 얻기도 한다. 이렇게 전도연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힘을 얻으려는 것이 영화 밀양 속에 있는 관념론의 예라고 볼 수 있다면 송강호는 어떤가?



극 중 송강호는 영화의 초반부부터 전도연의 차를 수리해준다. 또한 전도연이 피아노 교습소를 개업할 때 전도연의 피아노 교실이 잘 운영되라는 의미에서 위조된 표창장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전도연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송강호는 심지어 전도연이 교회에 다니자 같이 교회에 다니기도 하고 항상 전도연의 근처에서 힘이 되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전도연이 느낄 수 있도록 경험 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송강호는 밀양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유물론의 예시가 될 수 있다.


영화에는 이런 부분도 나온다. 전도연이 약을 사기 위해 약국에 갔을 때 한 약사 아주머니가 이런 말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저 햇살에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고. 이러한 말은 관념론의 개념과 일치한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어떻게 전개되는가? 전도연은 종교를 통해 잠시 구원을 받은 듯 해 보이나 아들의 살인자를 만나고 난 후 더욱 절망하게 되고 교회에서 설교하는 목사와 기도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기도 하고 장로를 유혹하는 등, 지독한 절망과 외로움에 자기 자신을 제어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절망을 이길 수 없어서 과도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한다. 이런 전도연을 지켜 주는 것은 전도연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송강호이다. 전도연이 아들을 죽인 범인의 면회를 다녀온 후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 했을 때도 송강호는 병원에 찾아와 전도연 곁에 있어준다.




영화 밀양의 마지막 장면은 전도연이 집에서 머리를 자르려고 하자 송강호가 거울을 들어주고, 전도연이 자른 머리카락들은 바닥에 떨어져 바람에 날리고 집 마당 한 구석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약사 아주머니는 햇살에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도연은 햇살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이 아니라 햇살의 따스함 자체를 느끼게 되었다. 영화가 관객에게 마무리를 요구 하며 끝나버렸지만 송강호는 어느 순간 전도연에게 햇살같은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까 언급한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개념은 고스란히 밀양에 적용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전도연이 보이지 않는 믿음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햇살인 송강호를 통해 삶의 희망을 찾아갈 것임이 확실하게 암시되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