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물【명사】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

그의 책을 읽고 문득 떠오른 단어다. 그리 고급스러운 단어는 아니지만, 이에 정말 어울리는 사람이라 이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마중물’은 그 자체로 희생을 필요로 하며, 불을 댕길 때 쓰는 작은 불씨처럼 작은 존재이기도 하겠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무엇이다.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가 제법 길고, 깡마른 팔·다리가 커다란 옷 사이로 드러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 가능하다. 그 주인공은 '이외수'.

책을 빌려 읽는 사람, 책을 사서 읽는 사람 이 두 부류가 사이좋게 사라지고 있는 요즘, 인간이 가진 약함을 공략한 책들은 '베스트셀러'라는 별명을 얻어 운 좋게 그 생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책들은 하나같이 '자기계발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외수 작가야 말로 '자기계발서'를 '자기계발서'가 아닌 듯 잘 풀어나가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책『하악 하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미래는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젊은이 보다는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무대다.'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충고. 그러나 이외수 작가는 충고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무심한 듯 건넨다. 글에서 작가가 칭한 ‘젊은이’들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무대를 위해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서'의 핵심 독자층인 젊은이들을 향한 글만은 아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글이다.

또한 그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렇게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자꾸 눈이 간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돋아난다면 당신 때문에 생겨난 밤하늘의 별은 모두 몇 개 일까요.' 그의 책『아불류 시불류』의 한 대목이다. 자신을 위한 생각이 줄어드는 것만큼 쓸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자신이 점점 쓸쓸해진다는 것을. 근데 작가는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 바쁜 사람들에게 작은 물음을 던진다. 이 작은 물음을 통해 우리는 생각한다.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잠깐이나마 고민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종교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기도해 볼 것이다. 정말 별이 돋아날까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품고 말이다.




 이외수 작가는 시에도 능하다. 그의 책『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에 실린 시 한 편.   

날마다 하늘이 열리나니
팔이 안으로만 굽는다 하여
어찌 등 뒤에 있는 그대를 껴안을 수 없으랴
내 한 몸 돌아서면 충분한 것을

사랑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정말 당연한 사실을 빌려 표현한 이외수 작가. 요즘처럼 흔해빠진 사랑에 도전한다. 이는 마치 열을 주고도 하나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다. 조금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어쩌면 이렇게 희생이 필요한 사랑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담는 문학인 ‘시’는 읽는 사람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 앞에 숙연해진다. 책 속에서 그가 꺼낸 말은 누구를 향해 던지는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대상이 독자라면, 그는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달아버린 사람처럼 말을 풀어나간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의 책『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에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여자는 남자에게서 열 냥의 금반지보다도 한 송이의 도라지꽃을 받고 가슴이 설레는 여자다.' 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자들이여, 도라지꽃을 받고 감동하라!'라는 의미의 말은 아니다. 이를 읽고 공감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겠지만 혹, 그렇다하더라도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정말 내가 어떤 것에 설레는 여자인지 말이다.



몇 권의 책을 통해 바라본 이외수 작가는 아니, 작가라는 호칭보다 그냥 이외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현미경으로 이끼를 관찰하며, 그 속에서 황홀 찬란한 세계를 느끼는 대단한 관찰력과 집중력을 가진 사람. 사람들이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다른 사람에게는 부끄러워 꺼내놓을 수 없는 열등감 그리고 음흉한 속내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드러내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것을 스스로 처리하게 만든다. 그것이 생각이든, 실천이든 말이다. 그는 분명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을 속 시원히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괜히 옆에서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네.'하며 훈수를 두는 사람처럼 심심한 사람이다. 그 ‘심심함’ 속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이 언뜻 보인다.

우리 삶 속에 그가 찾아왔다. 우리는 마중을 나가야 한다. 펌프질 한번 해본 적 없는 세대지만 온 몸으로 새 물을 품어 올리는 마중물을 떠올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