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세월호 사건 (13)

[뭍위에서] ②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김OO 씨*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많이 읽는다. 댓글도 주의 깊게 본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간편하게 알 수 있는 좋은 창구라고 생각해서다. 그도 사고 이후에 뉴스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던 20대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쳐버릴 정도’의 정보들이었다. 사회복지 전공자인 그는 인터뷰 도중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두 명의 동생이 있고, 학생회 임원을 맡았던 김OO 씨는 그 영향으로 평소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만큼 뒤에 따르는 죄책감도 크다고 말했다. 그날은 12시부터 6시까지 수업이 있는 날이라 늦게 일어났다. 그래도 두 시간 전에는 집을 나선다. 집이 학교랑 좀 멀어서, 아침 9시에 준비를 해야 한다. 핸드폰으로 배가 뒤집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시간은 정확히 기억..

[뭍위에서] ① "기사 하나가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조OO 씨*는 자신을 ‘무위도식 중인 휴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경남에서 10대를 보냈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그는 넘쳐나는 뉴스와 해내야만 하는 스케쥴 사이에서의 스스로를 사건에 ‘무뎌졌다’고 표현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그에게 세월호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 일은 습관이었지만,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를 아직 기억한다. 전공수업을 듣고 있었다. 일간지 어플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속보알림이 떴다. 오전 열한시 전 쯤이었나.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고, 몇 명이 구조됐다’는 식이었다. 원래 속보가 뜨면 확인 안하고 취소를 누른다. 한 줄만 봐도 내용을 다 아니까. 근데 그건 확인을 눌러서 읽었다. 우연이었다.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

[뭍위에서]를 시작하며 : 뭍 위에서 만난 당신의 '세월호 사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고함20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뭍위에서] 인터뷰 기획은 그 고민에 대한 결과물입니다. [뭍위에서]는 세월호 대다수 희생자의 친구세대도, 부모세대도 아닌.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목격자였던 20대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1.고함20이 할 수 있는 무엇인가요? 속보를 쓸 수 있나요? 아니요.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냉철함이 돋보이는 취재기사를 쓸 수 있나요? 음..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기성언론처럼 많은 취재를 할 수는 없겠죠. 팽목항에, 광화문에 앉아 있고 싶지만, 그분들과 함께 긴 도로를 걷고 싶지만, 학교나 직장에 가야하니까... 그럼 도대체 고함20은 무슨 기사를 쓸 수 있단 말입니..

망각과 싸웠던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홍대 거리 공연

5월 5일. 어린이날. 페이스북에는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뮤지션 사이는 “(공연이 취소되고) 가만히 누워 있다 보니 누군가가 ‘니들은 방구석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만 같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그저 시골에 사는 못난 음악가에 불과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발 가만히 있지 말자고. 금방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따지고, 힘을 모아 뭔가 바로잡아보자”고 적었다. 이는 국가적 애도라는 명분으로 똑같은 모양의 애도, 즉 ‘침묵’을 강요당한 뮤지션의 침묵 반대 선언이었다. 이 글은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사이를 비롯한 뮤지션 총 86팀은 5월 둘째주 주말, 홍대입구역 - 합정역 -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동그란 원형의 공간 곳곳에 그들의 노래와 피켓을 위치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