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페이스북에는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뮤지션 사이는 “(공연이 취소되고) 가만히 누워 있다 보니 누군가가 ‘니들은 방구석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만 같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그저 시골에 사는 못난 음악가에 불과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발 가만히 있지 말자고. 금방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따지고, 힘을 모아 뭔가 바로잡아보자”고 적었다. 이는 국가적 애도라는 명분으로 똑같은 모양의 애도, 즉 ‘침묵’을 강요당한 뮤지션의 침묵 반대 선언이었다.

이 글은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공연’으로 이어졌다. 사이를 비롯한 뮤지션 총 86팀은 5월 둘째주 주말, 홍대입구역 - 합정역 - 상수역으로 이어지는 동그란 원형의 공간 곳곳에 그들의 노래와 피켓을 위치시키기로 계획했다. 그 공간에서 음악가는 노래하며, 사진사는 사진을 찍으며, 몇몇은 퍼포먼스를 하며, 피켓을 들고 있기로 했다.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페이스북 페이지



거리 공연, 잊혀가고 있는 세월호 사건 꺼내오다

계획된 프로젝트의 첫째 날인 5월 10일의 홍대는 무척이나 더웠다. 전날까지만 해도 얇은 겉옷을 벗을 수 없게 만들었던 늦봄의 쌀쌀함은, 하루 사이에 햇볕 쨍쨍한 여름 날씨로 변해버렸다. 이상적인 소풍 날씨를 미리 알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홍대 거리로 나와 있었다. 거리는 ‘젊음의 거리’라는 홍대의 상투적인 수식어에 적합했고, 웃고 떠드는 유쾌한 젊은이들로 꽉꽉 채워져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뮤지션 있다(ITTA)


애국가를 부르던 김민경 씨



이렇게 밝은 홍대 거리에서 세월호 사건을 노래한다는 것은 물에 기름 같은 걸 끼얹는 시도 같았다. 테라스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 옆에서 노래하던 있다(ITTA)의 흐느낌에 가까운 보컬과 한스러운 연주는 마치 이국의 소리 같았고, 딸기 빙수를 맛보기 위해 길게 늘어진 카페 피오니의 대기라인 앞에서 울려 퍼지던 김민경의 애국가 제창은 음향사고로 잘못 재생된 소리 같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거리공연과 홍대 거리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가 아니었다. 어떤 이는 거리 공연을 하는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고, 어떤 이는 그들의 공연을 좀 더 보기 위해 행인에서 청중으로 공연장을 지켰다. 또 어떤 이는 노래하는 이들을 위해 음료수를 앞에 놓아주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지인을 통해 이 거리 공연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던 김호진(33) 씨는 한 손에 음료수로 채워진 비닐봉지를 들고 “이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공연도 보고 물도 갖다 주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음악가들의 거리 공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홍대 거리의 일상 속으로, 그간 우리의 삶을 슬픔과 성찰의 시간으로 만들었던 세월호 사건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침묵을 요구한 ‘국가적 애도’의 방식도 아니었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예전처럼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하자’라는 명령에 순응하는 행동도 아니었다.


이 날, 음악은 망각과 싸웠다



뮤지션 시와



뮤지션 시와는 이날 공연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서 이 명제를 체험했다. 우리는 대부분 세월호 사건 피해자들을 몰랐지만, 그들의 소식을 들으며 함께 슬퍼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점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명제를 체험하고 있다. 달이 넘어가고 실종자 숫자가 줄어들고, 세월호 사건 관련 기사가 줄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세월호 사건을 보며 같이 슬퍼하던 우리는 점차 그 사건을 알게 모르게 잊어 가는 중이었다.

 




5월 10일. 홍대에서 열린 음악가들의 거리공연은 음악은 세월호 사건이 끝나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그들은 ‘망각’과 싸웠다. 거리 공연을 앉아서 지켜보던 이영우(29) 씨는 “큰 사건이 아니고, 공감할 사건이 아니더라도, 굳이 음악가들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메시지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