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칠 수 있었던 대나무 숲이 온라인상에서 재현된 것은 지난 2012년의 일이었다. 2012년 9월 초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출판사 옆 대나무 숲’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일하면서 겪은 여러 고충들을 공유했다. 그 때부터 ‘방송사 옆 대나무 숲’, ‘인턴 대나무 숲’, ‘시월드 옆 대나무 숲’ 등 여러 대나무 숲 트위터 계정이 생겨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 상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 유행은 학교에까지 번져 ‘○○대학교 대나무 숲’, ‘○○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들이 여럿 생겼다. 2013년 말, 서울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가 생긴 이후로 연세대, 고려대학교 대나무 숲 페이지가 만들어졌다. 현재는 서울과 수도권·지방에 있는 많은 학교들이 대나무 숲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고등학교는 주로 ‘○○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라는 이름으로 페이지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여기에 학교 재학생은 물론 학교 출신 선배들과 타 학교 학생들도 종종 게시물을 올려 학교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건대부고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 숲과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엔 주로 학생들의 여러 질문과 하고 싶은 말, 고민 상담, 분실물 신고 등이 올라온다. 대나무 숲은 익명으로 페이스북 관리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따로 마련된 링크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 전송하면 관리자가 내용을 고려해 게시물을 올리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나무 숲 페이지가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이용되자 대나무 숲 사용자들을 위한 용어들도 마련되었다. 대숲하다(대나무 숲을 이용하다), 대숲대숲하다(대나무 숲에 글을 쓰고 싶다), 숲밍아웃(본인이 대나무 숲 관리자임을 밝힘)등 대나무 숲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용어들이 있다. 그만큼 이 페이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많은 학생들이 대나무 숲, 대신 전해드립니다 페이지를 이용하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페이지의 익명성이다. 페이스북은 자신의 실명으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열린 SNS이다. 친구의 게시물뿐만 아니라 친구가 누른 좋아요, 추천하는 페이지 등을 통해 내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곳이 페이스북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방적인 공간인 페이스북에 익명으로 글과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점은 많은 학생들을 대숲 유저로 만들었다. 이에 대해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김중백 교수는 "대나무 숲 페이지는 댓글 논란 등 여러 사건들로 SNS에 염증 혹은 불신을 느낀 사람들이 SNS 상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익명성을 추구한 시도”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페이스북의 접근성이다. 어플로 글과 사진을 올리고 실시간으로 댓글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나무 숲은 기존 학교 커뮤니티보다 사용하기에 훨씬 더 편리하다. 기존 학교 커뮤니티는 가입 후에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대나무 숲 페이지는 따로 가입할 것 없이 페이스북 계정만 있으면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다.

 

ⓒ연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 숲을 종종 이용한다는 한 학생은 "대나무 숲에 많은 학생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거나 궁금한 점을 익명으로 부담 없이 올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한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2000명이나 돼서 게시물이 널리 퍼질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