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무엇일까. 힐링, 청춘, 자기개발······ 그 중에는 ‘재능 기부’라는 단어도 있을 것이다. “재능”을 “기부”한다니, 허울은 좋다. 빅이슈 같은 노숙자 자활을 돕는 잡지는 순수한 재능 기부만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선거 캠프에서도 포토샵 및 웹사이트 관리 재능을 기부할 사람을 찾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새누리당 트위터 참고). 마치 유행처럼 여기저기에 번져 나가는 ‘재능 기부’, 과연 ‘착한’ 단어로만 쓰이고 있는지 되짚어 보았다.




“재능 기부”의 원래 의미 : 돌려주는 미덕

지난 3월 댄스가수 박재범 씨는 미국 팝가수 니요(Neyo)와 함께 뮤지션 꿈나무들을 위해 ‘드림 아카데미’를 개최하고 일일교사로 참가했다. 또, 양궁 올림픽 챔피언 오진혁 씨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학생들과 양궁 동아리 회원들에게 실전 기술과 규칙 등을 가르쳐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 밖에도 네이버에서 실시한 재능기부 캠페인에는 노희경 작가, 박칼린 음악감독 등이 참가하여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고 해피빈을 기부 받는 방식으로 비영리단체를 후원하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재능 기부의 원 의미에 알맞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재능 기부(talent donation)란 단체나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를 일컫는다. 자신의 역량을 마케팅이나 기술 개발에만 사용하지 않고 기부를 통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재능 기부는 주로 일반 기업이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기부 방식이었다. 각자가 가진 전문성과 지식 등의 재능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단어가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능 기부’라는 단어 뒤에 기부 활성화라는 ‘넉넉한’ 배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재능기부에 대한 요구가 커진 것은 경기불안 및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는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문화예술인의 재능기부 사례 및 활성화 방안,2011).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2009년 대량해고 사태 이후 비영리 기관 봉사 지원자 수가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고액 연봉을 받던 월가의 금융인, 투자은행 변호사 등 고급 실업자가 자원봉사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재능기부자의 입장에서는 첫째, 재능 기부를 통해 꾸준히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고 개발함으로써 실업 으로 인한 공백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 인맥이나 경험, 명성 등 무형의 자원을 얻을 수 있다. 비영리단체의 입장에서도 경기 침체로 기부금이 줄어드는 등 기관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적은 비용으로 전문가의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특히 컨설팅이나 법률 등 비용이 부담되어 이용하기 어려웠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재능 기부’는 다분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등장한 개념인 것이다.


악용되는 재능 기부 : 돈 안 줘도 해 줄 거지?

현실적인 상황에서 몇 마리 토끼를 함께 잡기 위해 붐처런 일어난 재능기부. 이것이 ‘착하게만’ 이루어진다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디자인이나 음악 같은 분야에서는 무형의 자원을 생산한다는 이유로 재능 기부가 당연시되는 측면이 있다. 실물이 오가지 않는 거래이기 때문에 “까짓 거 시간 좀 내서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정당한 약속을 파기하려는 것이다. 그 시간이면 돈을 받고 밥벌이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료로 ‘기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 생산자들은 당혹스럽다. 20대의 음악 산업 종사자들, 예술가들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에서 더욱 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실시한 ‘문화 관광 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이 예술인에게 어느 정도의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술가가 특별한 재능을 가졌으므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거둔 예술가들에게 기부를 요청한다면 기꺼이 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계 기반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재능 기부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재능 기부용 강연이 끝나고 사인회를 할 때 작가에게 책을 가져오셨느냐고 묻는 출판사의 경우나 무명의 인디 뮤지션들이 인기 가수 앨범 제작에 재능 기부 형식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게다가 ‘재능 기부’라는 어감 때문에 하기 싫어도 당당하게 거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재능 기부, 재능이 존중받은 뒤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소설가 김영하 씨는 위클리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재능 기부와 자원봉사가 다른 점은 개인의 차이를 더욱 존중하는 데 있다.”며 “재능을 오직 생계수단으로만 사용했던 기부자 본인에게도 새로운 삶의 의미를 일깨울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생계수단으로 삼기에도 부족한, 시간적·물질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까지 억지로 재능 기부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운운하는 “기부”는 오직 ‘배부른 사람’의 입장에서 요구하는 무급노동, ‘배고픈 사람’에게는 암암리에 강요당하는 자선활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뻔뻔한 요구로 기부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먼저 그 재능에 상응하는 존중을 받아야 한다. 흔쾌한 기부는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