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향은 무엇입니까.

삶은 달걀노른자만 골라먹는다. 휘핑크림이 듬뿍올라간 아이스 카페 모카를 마신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걷는 것이 좋다. 빨래를 할 때 섬유유연제는 꼭 분홍색만 넣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만 골라서 읽는다.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자막 없이 해외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그다지 이렇다할 취향이 없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당신이 아니라면, 요즘 어딜 가나 흔해빠진 것에 실증이 난 당신이라면. 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렜던 당신·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는 당신·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과 딱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1877년생 헤르만 헤세의 1919년 발표 작품 데미안. 지극히 안전하고 고상한 세계와 가까이 해서는 안 되기에 더 끌리는 세계 사이에서의 혼란. 이 책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신비롭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싱클레어이지만 실질적주인공은 데미안. 싱클레어의 삶에 데미안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당신의 세계는 안전한가요
?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되는 그 과정에서 싱클레어가 겪는 하나하나의 사건은 다 의미가 있다. 다소 종교적 지식을 요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데미안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렵지만 자꾸 읽어 내려가게 되는 것은 싱클레어를 통해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언제나 그렇듯, 처음엔 바르고 안전한 세계에 속해 있었다. 다음엔, 그 세계를 빠져나가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조심하며 살아간다. 한번이라도 전자의 세계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으면 우리는 즉시 일탈이라는 용어로 칭해버린다. 어쩌면 싱클레어는 이 두 세계를 똑똑하게 살아가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이 어떻든 데미안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나의 길 찾기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에 대한 끝없는 물음.


아프고 쓰라린 나의 세계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아프다. 어떤 일이든 익숙해진 것으로부터의 탈피는 고통을 수반한다. 싱클레어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어린 시절, 작은 거짓말로부터의 아픔. 소년 시절, 깊은 교감으로부터의 아픔. 성인시절, 간절히 바랐던 재회로부터의 아픔. 싱클레어는 그 아픔에 충실히 투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아픔과 쓰라림은 단단히 굳어져 세계를 이뤘다. 그러나 그 세계는 완전한 세계가 아니다. 완전한 세계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끝없이 아픔을 안고 투쟁해야 한다.


누구와 나아갈 것인가.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싱클레어의 아픔을 함께한 사람은 데미안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이 조력자로만 비춰지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분명히 데미안은 그저 지나가는 말 한마디로 싱클레어의 마음을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싱클레어를 꿰뚫어 보고 있다. 책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사이는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소울메이트(soulmate)’가 아니었을까. 우리에게도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나의 소울메이트는, 데미안은 어디에 있을까.


90
년도 더 된 짧지도 길지도 않은 책 한권이 주는 무게가 엄청나다. 누구는 인물관계를 파악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또 다른 누구는 사건 하나하나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느라 영 책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오랜 시간을 쏟을만한 값어치가 있다. 내 안에 두 세계가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솔직히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올바르고 안전한 세계보다는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던 세계에 더 끌렸던 자신을 들여다 볼 수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픔을 가진 나와 마주하게 되는 것. 쉽게 책을 덮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