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여행하던 중 알게된 ‘통영의 딸’


얼마 전, 여행 차 통영에 가서, 통영의 유명한 명소인 동피랑 마을을 거쳐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던 때였다. 어느 교회에 “통영의 딸을 구해주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아주머니들이 관광객들 한명 한명을 붙잡고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교회 안에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으며, 통영의 딸을 구출하기 위한 서명운동도 받고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전시회를 보니 ‘통영의 딸’은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숙자씨를 일컫는 말이었다. 신숙자씨는 재독 간호사로서, 유학생이었던 오길남 박사와 결혼해서 두 딸을 낳고 독일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길남 박사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신숙자씨의 건강이 악화되어 간호사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생계문제에 부딪힌다. 그러자 북한에서는 오길남 박사에게는 교수직, 신숙자씨에게는 치료를 보장한다는 제의를 통해 입북을 권유하고, 85년 12월에 오길남씨 가족은 북한에 가게 된다. 그러나 오길남 박사가 북한의 현실을 보고 86년 11월에 지령을 받고 유럽에 가다가 홀로 탈출하게 되면서, 신숙자씨 모녀는 북한에 남겨지게 된다. 지금 신숙자씨 모녀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 갇혀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이 분단의 현실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신숙자씨 모녀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안타깝고 인간적으로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북한 내 인권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신숙자씨 구출운동에 대해서 보수언론은 약간 다른 각도로 다루고 있었다. 단순히. ‘북한 내 인권’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통영이 낳은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에 대한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신숙자씨와 두 딸 (혜원, 규원)의 사진. 오길남 박사가 탈북한 후, 윤이상 선생이 가져왔다고 한다.  
 탈북자 들은 이 사진의 배경이 요덕수용소라고 말한다.

 

오길남 박사의 말이 과연 옳은가?

보수언론은 오길남 박사의 윤이상 선생 관련 증언을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 오길남 박사는 송두율, 윤이상등의 인물이 자신에게 입북을 권유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신이 북한을 탈출한 뒤에도, 윤이상이 가족의 사진과 음성테이프를 구해 와서 북한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북한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교회 건물에 붙어있던 현수막에도 걸려있던 위의 사진은, 전시회 홍보물에서는 ‘윤이상이 다시 월북하라고 회유하고자 육성 테이프와 함께 건넨 가족사진'이란 설명이 붙는다. 아마 전시회를 보고난 사람이라면 그 설명을 사실인양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길남 박사의 주장일 뿐이다. 윤이상 선생은 서독 한인회보에 ‘오길남 박사와 나’라는 글을 썼는데, 현재 오길남 박사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말을 하고 있다.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오길남과의 평소 친분관계에 대해선 “오길남을 1977년 봄 한민련 국제 회의때 먼발치로 보았다. 그 뒤 그의 이름은 들은 바 있어도 가까이 만난 일은 없었다”고 말한다. 또한 “1986년 11월 어느날 저녁에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저는 오길남입니다. 이북에서 도망해 왔습니다’ 하였다. 나는 그가 이북에 간지를 전혀 몰랐다” 며 입북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한다. 윤이상 선생은 신숙자씨 모녀의 구출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오길남 박사가 북한에서 차관급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구출해내기 어려웠고, 사진과 테이프만 겨우 구해서 가져왔다. 그런데 오길남 박사가 실성한 사람처럼 히히득거리며 “이제 가족찾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 라고 말해서 호통을 쳤고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글 말미에 입북권유, 재입북 권유, 협박등의 사실이 전부 거짓이라고 적었다.

사실 윤이상 선생이 입북을 권유했다는 것은 아무런 증거가 없다. 오길남 박사는 평소 “송두율, 윤이상, 야채상 김종한등이 나를 북한으로 유인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송두율 교수가 입국해서 재판받을 당시 오길남 박사는 증인으로 출두하여, 송두율 교수가 입북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서 송두율 교수측에서 반박했으며, 결국 무혐의 판결이 났다. 윤이상 선생의 경우도 송두율 교수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입북을 권유했다는 근거는 단순히 오길남 박사의 증언 뿐이다. 명확한 근거도 뒷받침 되지 않는 오길남 박사의 증언을 보수 언론이 그대로 적으면서, 윤이상 선생을 오길남 박사에게 입북권유를 한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형편이다.




윤이상 선생이 생전에 독일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보수언론의 시대착오적 색깔론


언론이 온전히 공정할 수도 없고, 특정한 정치적 지향이나 색깔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최소한 한쪽의 입장만 받아 적고, 그것이 사실인양 말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보수언론은 오길남 박사의 주장만이 진실인양 말하고, 윤이상 선생의 글이나, 윤이상 선생의 명예를 지키려는 통영예술계의 다른 의견은 무시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오길남 박사 인터뷰에 [가족 구해달라 애원했지만… 윤이상은 '北으로 돌아가라' 종용] 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동아일보는 [두 公人의 허위-노태우와 윤이상]과 같은 칼럼으로 노골적으로 윤이상 선생을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통영의 딸 구출 운동을 소개하면서 오길남 박사가 ‘윤이상 박사의 권유에 의해’ 입북을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뉴데일리나 올인코리아 같은 극우 인터넷 언론들은 윤이상 선생이 오길남 박사에게 입북권유를 했다는 것을 확신하고, 윤이상 선생에 대한 심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렇듯 보수 언론은 윤이상 선생이 입북 권유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협박까지 하면서 재입북을 권유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다. 그러면서 윤이상을 간첩 또는 가정을 파탄낸 악질적인 인물로 몰아세우고 있다. 동베를린 사건으로 간첩 누명을 받고, 한국에서 추방되기까지 하면서 고통을 겪은 윤이상 선생이, 죽어서까지 왜 이렇게 근거 없는 오해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뒤늦게나마 동베를린 사건이 정치적 목적에 의해 조작되고 부풀려진 것이 밝혀져서 선생은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나아가 통영시에서도 윤이상 기념관을 만들고, 윤이상 음악회를 열면서 선생의 명예를 회복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분법적 냉전시대의 논리로 윤이상 선생을 함부로 판단하고 규정지으려는 세력은 여전히 존재하는듯하다. 너무나도 깨끗한 푸른 바다가 있는 통영, 이 아름다운 고장에서 보수언론에 의해 레드컴플렉스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