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유승호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가 지난달 10일 개봉했다. 청순가련의 대명사 김하늘이 시각장애인을, 반듯한 이미지의 유승호가 불량기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영화는 개봉하기도 전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기대작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영화는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상영 22일째인 이 달 1일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여름방학을 노려 개봉한 많은 영화 중에 <블라인드>가 잘 나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영화가 자아내는 공포로 관객에게 무더운 여름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시원함과 짜릿함을 선사해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탁’.

영화는 극 초반부터 급속도로 전개된다. 111분이란 러닝타임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님에도 영화는 누군가와 속도전을 하듯 상영 내내 관객들을 잔뜩 긴장시킨다. 주인공 수아 (김하늘 분)가 시력을 잃게 되는 과정, 범인의 범행 현장에 수아와 기섭이 휘말리게 되는 과정, 그리고 쫓고 쫓기는 그들의 추격전, 추격 중 목숨을 잃는 조연들, 그리고 영화의 결말까지 영화는 쉴 새 없이 달린다. 이렇듯 <블라인드> 속 빠른 전개는 스토리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높이고, 관객을 자극하는 플롯과 장치를 담은 각각의 씬(Scene)과 어우러져 스릴러 특유의 공포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도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재밌는 드라마와 영화라 하면 실감나는 연기에 탄탄한 스토리가 기본이다. 이 영화 속 주, 조연 배우들은 열연을 통해 자신의 캐릭터를 100% 드러냈다. 김하늘은 시각장애인인 ‘수아’를 실감나게 연기했고, 유승호 역시 약간은 어설프지만 겉멋이 든 자유분방한 ‘기섭’의 모습을 잘 살려 연기했다. 또 범인 역의 양영조는 싸늘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눈빛까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안내견 ‘슬기’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자연스럽고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인다. 딱 2% 부족한 탄탄한 대본에 배우들의 정확한 연기가 어우러져 영화는 완성되었다.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에 관객들이 숟가락을 올리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쉽게 할 수 없는 간접 체험


영화의 주인공 ‘수아’는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이라 하면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얻은 사람을 뜻하는데 극 중 수아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후천적으로 실명을 하는 캐릭터이다. 후천적 시각장애인은 원래 볼 수 있던 것을 못 보는 것은 물론 뒤늦게 찾아온 장애에 적응하고 살아야 하기에 선천적 시각장애인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에서는 수아가 후천성 시각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이 ‘3년 후’란 자막으로 대체되었다. 자막으로 표현되었기에 확인할 수는 없다. 자막으로 처리된 3년 동안 수아는 혹독한 재활 훈련을 했을 것이고, 3년 후 수아는 안내견의 도움과 지팡이에 의지해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시시각각 난관에 부닥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니고 있던 횡단보도용 시각장애 보조기기가 오작동하여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뒤쫓아 오는데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을 인지할 수 없게 되자 속수무책이었다. 이러한 수아의 모습을 보면서 대다수 관객들은 ‘마음이 아팠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장애인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앞을 못 본다면 어떨까. 내가 저 상황에 처한다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 등의 감회를 털어놓았다. 실제 시각장애인의 90%가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란 것을 감안할 때, 영화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에게 영화는 간접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또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그들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시켰다.

영화 <블라인드>는 ‘수아가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지, 범인의 범행 동기와 범죄가 그의 직업인 무허가 낙태 전문의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기섭이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맞고도 살아남는지’ 와 같은 관객들의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키지 못 한다. 또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일부분 개연성이 떨어지고 주제 의식이 다소 불분명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픽션이다. 인생사에서 설명될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영화 속 이야기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제 여름도 막바지이다. 2시간가량 쉴 새 없이 짜릿한 스릴을 느끼고 싶은 분들께 영화 <블라인드>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