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하 ‘노인을 위한’)의 시작은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해가 다지고 어두운 초원, 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벌판, 바람에 빠르게 흔들리는 갈색 풀들, 이런 풍경들이 마치 사진을 넘기듯이 화면에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또 이와 함께 그저 바람소리와 늙은 보안관 에드의 목소리만이 우리 귀에 들릴 뿐 아무런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사운드 형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된다. 음악을 이용하여 극한 상황을 더욱 극하게 만드는 효과를 배제한 이 영화는 다른 스릴러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이 관객들의 목을 조르는 스릴러 영화라고 하면 딱 좋겠다.




서스펜스의 대가 코엔형제가 만든 12번째 영화 '노인을 위한'은 코멕 매카시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코엔형제는 ‘분노의 저격자’를 데뷔작으로 지금까지 1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들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특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분노의 저격자’, ‘아리조나 유괴사건’, ‘바톤핑크’, ‘위대한 레보스키’ 등 무려 9개 작품의 각본을 그가 직접 썼다는 것.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면 비슷한 점이 꽤 많이 발견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간간히 나오는 웃음유발 장면이다. 장르가 아무리 스릴러라고 해도 코믹요소는 빼먹지 않고 넣는 코엔형제였다. 하지만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인을 위한’은 다르다. 코믹요소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코엔형제의 소소한 코믹요소가 빠졌지만 ‘노인을 위한’은 2008년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4개 부문에서 수상한다. 또 2008년 골든글로브 2개 부문 수상, 2007년 뉴욕비평가협회상 4개 부문 수상 등 다른 많은 상을 휩쓴다. 이렇게 비평가에게나 관객들에게나 많은 호평을 받은 ‘노인을 위한’은 코엔형제 영화중 최고의 수익을 낸다. ‘노인을 위한’의 수익은 약 5,662만 달러로 추산 되는데 이는 코엔형제가 ‘밀러스 크로싱’으로 벌어들인 5,080만 달러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노인을 위한’은 프롤로그에서 각 캐릭터의 성격과 특징을 행동이나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그 인물을 설명하고 그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은 여느 추격 스릴러와 같은 직선적인 내러티브 구성을 취하고 있다. 직선적인 내러티브 구성은 도망자의 에피소드, 추격자의 에피소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여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몰입시킨다. 덕분에 관객들은 세 사람의 추격전에만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론 직선적인 내러티브 구성 때문에 관객들은 '아무에게도 도움 받지 않는 시거의 모습', '에드의 대화내용'과 같은 의미있는 부분들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어렵다.”, “긴장감 넘치지만 영화의 깊은 뜻은 모르겠다.” 라며 영화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이런 토로들이 ‘노인을 위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영화를 집중하고 봐야하며 '노인을 위한'이 단지 추격스릴러물이 아니라 쉽지 않은 무거운 주제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노인을 위한’에 대한 의문들은 영화를 깊게 보고 분석한다면 스스로 풀 수 있다. 영화제목 부분도 영화의 주된 인물 중 가장 늙은 인물인 보안관 에드에 대해서 분석해보면 그 의미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다. 에드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시대에 보안관을 했었고 계속 해서 보안관을 하고 있다. 에드가 '아버지 시대 때에는 총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듯이 에드는 빠르게 삭막해져 가는 요즘 시대에 대해 한탄한다. 이는 노인과 같은 약자들이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빠르게 세상이 삭막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늙으면 다 보여”라는 에드의 말처럼 에드는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노련미로 젊은 보안관이 보지 못하는 단서를 속속 찾아내지만 사건 현장에는 모스나 시거보다 한발 늦게 도착한다. 이렇듯 에드는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 방관자 신세만 되고만다. 이를 통해 영화는 비록 노련미로 무장한 노인이라도 빠르게 변화하는 젊은이들의 세계 앞에서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에 대한 의문을 스스로 푸는 것은 ‘노인을 위한’이 관객에게 주는 또 다른 재미이다. 감독은 제목 부분 말고도 시거가 가축도살용 압축 산소통을 가지고 다니는 것의 의미와 시거가 가지고 다니는 동전의 이분법적 의미, 그리고 절대 악적인 시거의 존재의 의미 등 여러가지 해석장치들을 영화에 툭하니 던져 놓았다. 이런 해석장치들을 통해 '노인을 위한'은 더욱 내용적 측면에서 더욱 풍성한 영화가 되었고, 관객들에게는 몇번이고 곱씹어 볼만한 영화가 되었다.

‘노인을 위한’은 미국에서 많은 호평과 흥행대박, 권위 있는 상을 다수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르거나 알아도 제목만 들어본 사람이 많다. 우습게도 그 제목 때문에 영화 보기를 미루고 있다는 사람도 많다. 제목만 봐서는 그리 재밌는 영화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 평론가는 “영화에 스피드와 스릴, 그리고 풍성한 볼거리와 오락적 성찬(盛饌)이 없다.”라고 혹평하고 있다. 그래도 이 영화를 자신 있게 명작이라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스피드와 스릴은 없지만 감독과 배우가 천천히 숨통을 조여 오는 절대적인 존재 살인마 시거를 너무나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시거가 가게 안에서 가게 주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확실히 풍성한 볼거리도 못되고 스피드와 스릴도 없다. 하지만 절대악의 존재 살인마 시거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관객들은 긴장한다. 대화장면에서 시거의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들을 떨리게 하는 것이다.



추격 스릴러라고 무조건 스피드와 액션,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성격에 맞게 서스펜스를 잘 살리면 그만이다. 코엔형제는 배경음악의 부재와 인물의 독특한 무기, 그리고 적절한 배경 설정 등을 통해 서스펜스를 잘 살렸고 관객들을 열광 시켰다. 이것이 ‘노인을 위한’이 오래도록 명작으로 기억될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코엔형제를 찾고 코엔형제가 만든 영화에 눈길 한번 더 주는 이유 일 것이다. 코엔형제는 싸이코패스를 이용해 ‘파고’ 이후 우리를 또 한번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세계로 초대했다. 이번 여름에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신선한 살인마의 냉기를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