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교육연구개발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중앙일보 대학평가 발표되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평가 부문은 교육여건 및 재정, 국제화, 교수 연구, 평판·사회진출도 등 4개 영역으로 산출하였고, 각 분야별 순위와 종합 순위 등이 발표되었다. 이번 2009년 대학평가는 전국 4년제 일반대학 가운데 참여희망 대학에 한정한 88개 대학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통해 산출되었다.

매번 발표될 때마다 낮은 순위 대학교들은 낮은 수위대로 높은 순위 대학교들은 높은 순위대로 순위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서울 내 대학순위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뿐 아니라 동급이라고 생각했던 대학들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순위가 갈라져 해당 학교 간 감정싸움이 깊어지기도 했다.

이번 대학순위 발표는 학과특성화를 통해 대학 간 일차적 비교를 통한 서열화를 막겠다는 움직임을 비웃는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의미도 모르고 외웠던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 라인이 부활한 것이다. 이번 대학순위발표 또한 ‘카서포 고연성 한경서외’로 대학서열의 순서만 바꿀 뿐, 매년 변화한다는 특징 빼고는 대학서열화 조장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배치표 http://cafe.daum.net/cchoi38/4qjC/90047?docid=CAh6|4qjC|90047|20080702173859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에게 대학은 서열화된 배치표로 인식된다. ‘성균관대’가 성균관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아, 스카이보다는 좀 아래지만 경희대나 건국대보다는 위에 있는 대학교’라고 인식되는 것이다. 자신의 점수에 갈 수 있는 대학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줄을 세워놓은 배치표를 보면 대학교의 서열화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무의미해 보인다. 이미 대학은 서열화 되어 있고, 학생들은 그 서열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에 자신의 내신과 수능점수를 넣고 엔터만 치면 자신의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들이 순서대로 뜨는 것처럼 말이다.

교육과정이 변화하면서 강조하는 대학지원 방법도 달라진다. 특성화된 과에 들어가라. 학교 에서 지원받는 과를 선택하면 좋다. 자신이 원하는 과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과가 유망한 학교를 지원하라. 학교만 보고 대학을 지원하는 것은 옛말이라며 전략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과를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상담결과들. 이런 충고는 대학순위발표를 보면 헛된 일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어, 자신이 방송일이 좋다 하여 방송학과가 특성화되어 있는 지방 A대를 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옳은 일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학생들의 인식 사이에서 그래도 순위가 높은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기업 내에서도 학교의 서열화된 순위를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일례로 K양(지방대 방송관련학과 출신)은 특강에서 “결국 방송은 공채가 아니면 막노동 비정규직 뿐이다. 공채는 결국 학력이 높은 애들이 잘되더라,”라는 현실을 듣고 ‘그럼 나는 어쩌라는 말이냐. 이미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다시 대학을 들어가라는 것이냐. 나는 비정규직밖에 길이 없다는 말이냐’라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결국 대학순위 발표는 ‘서열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공고하게 만든다. 공적으로 발표되는 대학순위는 사람들의 인식구조 자체에 대학을 서열화시킨다. 학생들은 서열화된 대학 순위에 따라 대학을 지원해 낮은 순위 대학에는 지원자가 몰리지 않는다. 기업은 대학순위를 염두에 두고 서류전형을 진행한다. 높은 순위 대학에 좋은 인재가 몰릴 수밖에 없다. 좋은 인재가 지원하지 않는 대학이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대학이 넘쳐나는 이 시기에 종합순위로 순위를 책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 종합대학이 아닌 대학들은 각 특성에 맞게 자신들의 대학을 발전시켜 나가겠지만 이 방향이 종합순위를 책정하는 기준에 들어맞지 않을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교육대학의 경우 과도한 국제화의 필요성과 사회진출 항목 중 기업진출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항목의 점수가 떨어지면 종합순위 내에 하락을 가져와 인지도 자체가 감소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특성화 대학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술이나 방송, 의학 등 한 가지 분야를 특성화한 대학들은 대학순위 발표 자체에서 소외되고 있다. 오히려 한 분야에 특성화된 대학을 지원하고 육성해 다양화된 대학을 키워야 하는 판국에 종합순위 산정은 사기를 저하시킬 뿐이다.

물론, 이번 해 대학평가 순위 발표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인문계 특성화 대학’, ‘자연계 특성화 대학’, ‘교육 중점 대학’ 이라는 기준으로 순위를 내기도 했다. 작년까지 이어져 온 순위평가의 결점을 보완하는 계기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3가지 순위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화된 잣대로 순위산정이 필요할 것이다.



순위산정 기준 또한 차세대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국제화와 환경조성 등 한정된 방향으로 유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든다. 국제화와 교육여건, 평판도, 교수연구라는 지표도 물론 중요하지만, 각 대학의 발전도가 외국인 선생님이 많다고 해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여건 관련지표 또한 대학의 경제적 여건을 간과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기업과의 유착이나 대학의 경영효율화 등 현재의 시장자유주의적 대학발전 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학생들의 만족도와 학사행정의 효율성, 그리고 사회에의 공헌도와 학과 개설 수업들의 심화도 등 각 대학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는 많다. 오히려 학문의 상아탑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서 객관화된 지표만을 가지고 효율성을 측정하고 일차원적인 경쟁구조를 성립하는 것은 학문의 성격 자체를 잘못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앙일보라는 매체 자체가 평가하는 대학순위에 대한 신뢰성의 문제도 있다. 소위 ‘너네가 뭔데 대학을 평가하는 것이냐’라고 문제제기한다면 중앙일보 측에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학을 평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을 유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사기업에 의해 유도되는 대학평가는 국가에서 수행하는 것보다 신뢰성과 공정성이 부족하다. 사기업의 대학순위 판정 과정에서 암묵적인 거래가 전혀 없을 것이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암묵적인 거래가 있다 하더라도 견제할 수 있는 기구나 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종합대학 하나가 움직이는 경제 단위도 천문학적인데다가 대학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대학 순위 상승이 대학에 가져다주는 이미지 쇄신 효과를 생각하면 로비에 대한 유인(incentive)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말해 학교 순위 상승으로 수시 원서 접수가 증가하면 원서비로 들어오는 금액은 상상치 못할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기업에게 대학순위 평가를 맡겨두는 것 자체가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도 줄어들지 않았던 한국의 교육비 지출.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기가 뜨겁고 교육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민감한 한국에서 대학순위 책정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서열화의 문제, 대학평가 지표 자체의 문제, 대학평가 주최자 자격의 문제 등 대학순위 발표에는 여러 논쟁점이 존재한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한국의 사교육 구조라든지 공교육 붕괴문제만 논할 것이 아니라 대학교의 구조적 문제, 양적 난립 등 대학 자체의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