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가요제 앨범과 리쌍 8집은 최근 국내에서 가장 메가히트를 기록한 앨범으로 손꼽힌다. 많은 사람들은 두 앨범의 히트에 대해 ‘역시 음악이 좋으니 흥행한다’며 아이돌 천지였던 한국 음악에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대박행진’을 온전히 음악 덕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최근 국내 개봉한 다큐멘터리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 2010)는 이러한 현대 예술의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MBW(Mr. Brain Wash)다. 그는 마돈나의 기념 앨범 표지 작업 등으로 유명해졌으며, 티에리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다. 본래 티에리는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행적을 쫓아다니며 광적으로 비디오를 찍어 수집해오다가, 2008년 LA에서의 데뷔 전시가 대성공하면서 그래피티계의 대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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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치 금광 같아"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티에리의 데뷔 과정을 보여주는 종반부다. 그는 유명한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 LA 사상 최대 규모의 그래피티 전시 "Life Is Beautiful"을 기획한다. 보통 작가들이 길거리 그래피티와 소규모 전시를 통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으며 데뷔하는 데 비추어 볼 때, 신인작가의 이러한 행동은 도박에 가까웠다. 무작정 디자이너, 기획자와 인부들을 고용하고 자기 집을 담보로 잡으면서까지 대규모의 전시에 인생을 걸어버린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조소에 가까운 걱정에도 불구하고 티에리의 LA 전시는 대성공한다. 성공의 핵심은 전시의 엄청난 규모, 그리고 바로 언론플레이. LA의 유력 일간지 1면에 전시가 소개되면서 LA 내에서 엄청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전시 시작 8시간 전까지도 전시실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 그 와중에도 진열보다는 인터뷰를 먼저 챙기고 있는 MBW, 내부의 분주한 모습은 모른 채 전시관 밖에 인산인해를 이룬 관람객 부대가 오버랩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전시 성공으로 단숨에 부자가 된 티에리는 카메라를 향해 이런 대사를 날린다. "이건 마치 금광같아. 그저 뭘 칙칙 뿌리고 이건 얼마? 하면 1만 8천 달러. 외치면 그만이니까."

실제로 미적인 가치나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한 철학이 확실하지 않은 티에리는 그때그때 작품을 제조해 낸다.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작품을 참조하거나 순간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려 그것을 고용된 작가에게 찍어내도록 한다. 그러나 이렇게 얕은 미술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관람한 사람들은 티에리를 향해 ‘제2의 앤디 워홀’이라는 찬사를 쏟아낸다. 그리고 철저히 자본주의적으로 대량 생산한 작품들을 엄청난 가격에 팔아 댄다.


예술과 자본주의, 어떤 예술이 성공하는가

자본주의적인 생산과 소비가 예술 분야에도 침투하면서 예술의 본질은 세간이 생각하는 개념의 순수성에서는 멀어지게 되었다. 예술적 영감을 음악의 방식으로, 미술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 자체에서 나오는 미학적 예술이 아니라, 좀 더 많이 팔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상업적 예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음악계는 상업성이 뛰어난 아이돌 뮤직 위주로 재편되었고, 미술계는 일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극단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재테크를 위한 시장’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예술의 위선에 대한 폭로를 매우 강렬하게 이루어낸다.

서론에서 언급한 두 앨범의 흥행에 대한 분석도 조금 더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두 앨범이 음악의 힘만으로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이라면 반응이 천천히 왔어야 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거의 전곡은 음원 공개와 동시에 음원 차트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음악을 듣고 평가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대중의 기대감을 바탕으로 대박을 예약해 둔 것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와 리쌍의 음악은 분명히 듣기 좋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이 차트에 있는 모든 곡 중에서 가장 좋기 때문에 1위를 했다고는 볼 수 없다. 20년 이상 활동한 중견 뮤지션들, 그리고 새롭게 대중에게 모습을 내민 신인들, 인디 음악, 해외 음악에 이르기까지 ‘좋은 음악’은 세상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음악이 대중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아니다. 무한도전 가요제는 토요일 주말 1위 예능을 통해 4주간이나 홍보되었고, 리쌍의 멤버 길과 개리는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웃기지만 음악성은 뛰어난’ 이미지를 구축하며 본인들의 가치를 높여 놓은 바 있다. 이것이 흥행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음악이 좋아서 흥행했다’는 분석은 ‘흥행했기 때문에 음악성을 인정받았다’라는 분석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우리는 유사한 사례를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유명 작가의 이름을 넣은 전시들이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는 이유는 관람객 모두가 전시된 작품들에서 대단한 미적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많은 관람객들은 작가의 이름, 전시 장소가 주는 권위에 이끌려 전시회를 감상한다. 올해 문화계 최대 핫 키워드인 ‘나는 가수다’도 자본주의에서 예술적 가치란 무엇인가를 명쾌하게 증명한다. 특히 소위 ‘중박 가수’였던 김범수가 일요 인기 예능 출연 이후 신곡 ‘끝사랑’으로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전에도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던 적이 있으나 그 곡은 ‘소녀시대’의 태연과의 듀엣이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 안의 영상들은 급조된 전시에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또 관람 이후에도 탄성을 내질러대는 관객들을 해학적 시선으로 조명한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미술관 출구 앞에 반드시 선물 가게를 배치하는 자본주의 예술의 저속한 상업성을 대놓고 꼬집는다. 현대 상업 예술을 무비판적으로 예술을 향유해 온 대중들에게 수많은 물음표가 던져진다.

MBW로 ‘잘 나가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된 티에리의 원래 직업은 의류 사업가였다. 그는 당시의 재봉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처리된 옛날의 ‘재고’ 의류들을 가져다 디자이너가 손수 제작한 제품처럼 속여 막대한 수입을 얻어 왔다. 그의 이러한 전적은 “이건 마치 금광 같아”라는 그의 말과 만나 궁금증을 낳는다. 우리가 좋다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은 정말 좋아서 좋은 것인지, 아니면 고도의 예술 마케팅에 우리가 당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