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고 황당한 스토리 전개로 방영 내내 한자리 시청률을 면치 못했던 월․화 드라마 <스파이 명월>이 저번주 화요일 17화 18화 연속 방영으로 끝을 맺었다. 시청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스파이 명월>이라는 이름이 앞으로 회자된다면, 포털 뉴스 전체를 잠식했던 한예슬의 촬영거부 사태 때문일 것이다. 사태의 화제성에 비해 싱거운 결말이기는 했지만 한동안 한예슬의 행동에 대한 찬반으로 여론이 나뉘기도 했고 이 사건에 대한 분석들도 쏟아져 나왔다. 분명 한예슬이라는 배우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한예슬만큼이나 이 드라마 방영 전후가 달라진 배우가 있으니 바로 상대배우 에릭(문정혁)이 그 주인공이다.

‘루저’라는 키워드로 보는 에릭의 연기

에릭의 커리어는 꽤나 일관성이 있다. ‘나는 달린다’라는 드라마에서 양아치역할로 연기 데뷔한 이후 ‘불새’, ‘신입사원’, ‘무적의 낙하산 요원’, ‘케세라세라’, ‘최강칠우’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불새’의 재벌 역할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의 루저 역할을 맡았다. 이 작품들의 스토리텔링 방식도 기존의 안정적 공식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들이 다수였다.

 

에릭은 ‘신입사원’에서 취직도 못하는 이름 모를 지방대 졸업생을 연기하여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 이미 20대의 자화상을 그렸고, ‘케세라세라’에서는 능력도 자신감도 있지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의 초상을, ‘최강칠우’에서는 겉으로는 난세의 사회에 영합하며 살아가는 듯 하지만 밤에는 자객으로 악인을 처벌하는 역할을 그려냈다.

영화 평론가인 듀나가 그의 게시판에서 문정혁의 연기를 두고, “전 [최강칠우]에서 문정혁(에릭)의 연기가 지독하게 과소평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의 루저스러운 빈궁함은 배우로서 굉장히 훌륭한 자산이에요.”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릭이 다른 잘생긴 남배우들과 차별화를 이룬 점이 있다면 추함과 찌질함을 감추지 않으면서 사회에 가지는 반항심을 표출하는 이미지이다.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 대부분은 개인으로써는 꽤나 영민하지만 체제를 뒤엎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하지만 무언가는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할말은 하고 살았던 연예인 노조원 에릭 


그의 연기에 대한 이런 감상은 10년 넘게 연예계 생활을 해온 에릭이 쌓아온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지금까지 일반적인 연예인과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4차원’이라는 말의 원조인 그는 엽기적인 사진과 행동들로 남들과 다른 이미지 메이킹의 방식을 창조했다. 또한 SM에서 신화라는 이름으로 독립해 나오기 위해 직접 법전을 공부 했다던가, 거액의 제의를 거절하며 신화에 남았다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의리있는 남자가 되었다. EBS 논술 문제집에 등장할 만큼 논조가 강한 글들로 기사들을 반박하며 여러 기자들을 적으로 돌렸지만 ‘할 말은 하는’ 이미지를 가졌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연예인 노조활동을 하며, 드라마 촬영현장의 열약한 환경을 지적하고 사전제작의 필요성을 여러 번 언급했었다는 점이다. 또한 연예계의 잘못된 관행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거물이 되겠다는 다짐을 인터넷을 통해 팬들과 나누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의 2011년은 어떠한가. 촬영 거부한 한예슬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리며 사전제작의 현실적 어려움을 이야기 하고 하늘같은 선배님들 앞에서 “감히 개혁을 외치기엔 제 자신은 너무 작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에릭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니다.


기독교 기득권이자 기회주의자로써의 2011년 에릭

스파이 명월 방영 도중 발생한 법정스님 사건으로 에릭은 기독교인의 배타적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종교가 배타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을 이해한다 해도 역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예슬 촬영거부를 틈타 그 사건은 잊혀지는 듯 했지만, 언론에서 쏟아지는 에릭에 유리한 기사들은 자신의 악재를 막기 위해 동료의 악재를 이용하는 기회주의자로 낙인찍는 마이너스 역할을 할 뿐이었다. 게다가 한예슬에게 동정표가 모아지는 시점에서 한예슬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린 것은 방송 고위관계자에 대한 아부성 행동으로 읽힌 것이다. 이렇다면 에릭이 앞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새로운 것들, 예를들면 트위터를 통한 번개같은 것들도 연예인의 “쇼”로 읽힐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이 사건 이전에 법정스님 사건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릭은 이미 ‘기독교 기득권’이라는 이미지가 단단히 박혀버렸다. 이미지는 모든 행동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법. 다른 많은 연예인들도 자신의 종교색으로 많은 팬들을 잃어왔다. 나얼이나 MC몽의 동성애 혐오 표출이 대표적인 예다.

에릭은 트위터를 시작한 초반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쿨한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고.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다 똑같다는 인식을 다시 심어줬을 뿐이다. 지금 에릭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대한민국 기독교가 의미하는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 바리새인과 싸우던 혁명가 예수님이 보여주는 기독교인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같은 그룹 멤버이자 기독교인인 김동완이 ‘동성애는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며 비난할 수 없다’는 포스팅을 통해 보여주었던 행동이 '불신지옥'보다는 기독교인의 쿨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