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바랜 부모님의 연애시절 사진을 보고 가슴이 설레고, 헌 책방의 쾨쾨한 냄새를 좋아하며, 유행하는 일레트로닉 음악보다는 통기타에서 울리는 소소한 음악에 더 끌리는 당신. 그대에게 닥 맞는 ‘아주 오래된 낭만’을 선물합니다.

황지우 시인

시집 [게 눈 속의 연꽃]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황지우 시인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이자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등장하는 이 시는 우리에게 꽤 친숙하다. 제목, 시인 혹은 전문을 알지는 못해도 어디에선가 한번쯤 들어본 것처럼 귀에 익다.

시집『게 눈 속의 연꽃』(1991)에 자리 잡고 있는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서정시로 잘 알려져 있다. 시 속 화자가 다가가는 대상이 사랑하는 연인이고 더 이상 그 혹은 그녀를 기다리며 마음 아파하지 않으며 대상에게로 다가간다는 해석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대상인 ‘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유와 평화를 대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이 아니다. ‘만남에 대한 절실한 기다림’이라는 주제도 아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중간고사를 위해 달달 외웠던 이해와 감상들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에게로 다가가는 나의 ‘능동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시의 초반에 화자는 ‘너’를 기다리며 스쳐가는 모든 발자국들에 귀를 기울이며 설레어 한다.  이런 화자의 모습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라는 문장과 오버랩 된다. 그렇게 화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너’를 기다리며 한껏 마음을 부풀리기도 하고 초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다리는 ‘너’는 오지 않는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라는 문장이 보여 주듯 ‘너’를 기다리는 나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화자는 오지 않는 ‘너’에게 실망하고 체념하지 않는다. 이것을 계기로 능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흡사 음악의 전조되는 모습인 이 구절은 드디어 ‘너’를 향해 다가가는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 이상 ‘너’가 나에게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선가 다가오고 있을 너를 향해 나 또한 다가가는 것이다. 그렇게 ‘너’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나를 움직인다.

‘너’를 향한 나의 움직임,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해 시는 존재한다. 다가오지 않는, 멀게만 느껴지는 나만의 ‘너’를 향해 다가서라는 것. 이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너’는 무엇인가? 혹시 당신도 ‘너’가 다가오기만을 무진장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더 이상 원하는 것들이 당신의 손을 잡아 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보아라. 자, 이제 당신의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