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록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록 음악의 중심이 되는 악기인 전자기타에도 매우 관심이 많았다. 기타리스트를 좋아하다보면 자연히 그가 치는 악기의 브랜드를 알게 되기 마련이었고, 기타를 직접 연주하지 못하면서도 기타 브랜드를 줄줄 외우게 되었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 깁슨의 레스폴, 아이바네즈등은 단순히 이름만 듣고도 감탄사를 내뱉게 되는 브랜드들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막상 기타를 사려고 했을 때 그런 고가의 브랜드는 감히 살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는 콜트의 기타를 많이 사용했다. 콜트는 가격은 싸지만, 성능은 나쁘지 않은 기타의 소위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기타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콜트는 중저가의 기타만 만드는 회사인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펜더, 깁슨, 아이바네즈 전부 다 한국의 콜트 기타 공장에서 OEM(주문자상표 부착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콜트·콜텍(콜트는 전자기타, 콜텍은 통기타 브랜드) 회사는 사실상 기타 시장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콜트 기타는 가격대 성능비도 좋고, 더구나 외국 유명 브랜드 기타도 만드는 기술력도 있으니 언뜻 보면 굉장히 대단한 기타 회사로 보인다. 하지만 잘나가는 기업의 이면에는 노동자의 저임금, 열악한 작업환경, 그리고 정리해고가 있었다.

2007년 콜트·콜텍 기타에서 일하고 있던 인천공장 56명, 대전공장 67명이 해고되었다. 2006년 8억의 적자를 보아서 재정상황이 악화되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콜트·콜텍은 10년간 800억이상의 흑자를 낸 탄탄한 기업이었고, 사장은 한국의 120위의 부자다. 누가 봐도 부당한 정리해고였다. 콜트 노동자들은 직장을 다시 되찾기 위해 투쟁을 했고, <꿈의 공장>은 그들과 함께 한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 그리고 소비를 이야기하다

<꿈의 공장>은 친절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다. 콜트·콜텍에 얽힌 여러 가지 문제를 쫙 펼쳐놓고 여과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김성균 감독은 말한다.  “일자리 문제에서 시작하지만, 예술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고민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노동의 착취구조가 몇 단계로 되어있다는 것에 많은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 문제를 딱 하나의 답으로 제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제점들을 아예 다 펼쳐놓았다. 그래서 관객들이 고민을 많이 안고 갔으면 좋겠다.” (9월 3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의 말과 같이 <꿈의 공장> 단순히 투쟁을 기록하고, 그 투쟁을 알리고, 기타 노동자들에게 공감하게 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콜트 노동자들을 도와줍시다, 또는 같이 투쟁하자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 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특히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부분인, ‘소비’에 대해서 많은 성찰을 필요하게 한다.

콜트·콜텍의 사장인 박영호 사장은 악덕기업주다. 인건비를 더욱 더 싸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더욱더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한국 공장을 아예 없애버리고 노동자들을 전부 해고시켜버렸다. 이 글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들과 연대해서 싸워나가는 것은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도 당위적이다.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해고하는 자본가의 횡포에 우리는 분노해야하며, 그들이 싸우는데 많은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분노하는 것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왔던 방식 자체를 반추해보게 한다.
 
영화 속에서 기타를 사러 온 외국 사람들은 기타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저임금에 기타를 만드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백인 기타리스트 한명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조건 가격이 싼 것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어떤 지역의 밴드 멤버들은 회사가 망하면 노동자들이 다 일자리를 잃게 되므로, 그래도 그 기타를 사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난한 인디밴드 뮤지션 중 하나인 ‘타바코 쥬스’의 기타리스트는, 자신도 “돈이 지금보다 더 없었더라면 결국 콜트기타를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우리가 비난할 수 있을까?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공연을 펼치고있는,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




그러나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현실

우리가 입는 H&M 티셔츠를 생각해보자. 원재료의 단가가 올라가는데, 티셔츠 가격은 그대로다. 제3세계 국가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방글라데시에 있는 H&M 노동자들은 하루에 1.19유로 (1800원)을 받고 일하고 있다. 1.19유로라면  19세기 유럽 재봉사의 임금 수준이며, 방글라데시에서도 하루에 1유로를 가지고 살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H&M의 티셔츠가 질 좋고 값싸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같은 품질이라면, 값이 저렴한 물건을 찾을 수밖에 없다. 회사는 소비자의 요구를 맞춰서 가격을 싸게 하고자 한다. 그런데 가격을 낮추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하는 것이다. 콜트·콜텍의 정리해고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기서 시작된다. 콜트·콜텍 사측에서는 기타의 원가를 더 낮춰서 시장에서 경쟁력을 얻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월급을 주는 것조차 아까워서, 노동력이 더 값싼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겨버렸다. H&M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문제가 비단 콜트·콜텍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에게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의 물건을 사지않는 형태의 ‘불매운동’을 하는 식으로 저항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알바해서 등록금을 마련하는 20대나, 100만원 미만의 돈을 버는 비정규직 같이 당장 자신의 돈 1000원이 아까운 사람들에게 동일한 품질인데, 더 비싼 제품을 사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랜드가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부 해고했을 때도, 다른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귀가하는 길에 홈에버에서 장을 봤다. 편리하고, 싸기 때문이다. 부자들이야 가격에 상관없이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싼 가격 앞에서 서민들이 가장 무력해지는 것이다.

결국 답이 없는 문제일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근본적인 틀을 바꿀만한 방법을 제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공장>은 답이 없어보여도, 고민을 해서 답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도 찾아내야만 할 만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가혹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언제까지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 착취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진정한 꿈의 공장은 없는가

<꿈의 공장> 이라는 제목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박영호 사장이 87년도부터 노조의 투쟁이 거듭돼 온 인천공장을 ‘노조가 점령한 공장’으로, 반면에 2001년 새로 신축한 콜텍 대전공장은 신설되어 노조가 없으므로 <꿈의 공장>이라고 표현하며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꿈의 공장>은 사업주의 꿈이 아닌, 노동자들의 꿈이 살아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합리적인 임금과 복지혜택을 받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꿈을 소박하게나마 이루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멀쩡히 일하던 노동자를 무단 해고하는 현실에서는 <꿈의 공장>으로 가는 길은 너무도 멀기만 하다.

영화 <꿈의 공장>이 묻는다. 진짜 노동자들의 <꿈의 공장>을 만들기 위해서 당신은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아니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며,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타노동자가 없었다면, 기타가 없었고, 기타가 없었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꿈의 공장>이 우리에게 던져준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