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하려면 소위 ‘스펙’이 필요하다. 그런데, 스펙이 취업 준비생에게만 해당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한 나라의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는 스펙을 갖추어야 한다.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병역기피”가 그 것이다. 요 며칠간 열렸던 인사 청문회는 장관 정도의 자리에 오르려면 어느 정도의 스펙을 갖춰놔야 하는지 보여줬다.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여성가족부 장관 자리에 적격임을 증명했다. 청문회에선 그녀가 아파트 2채를 구입할 때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취득세와 등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밖에도 명의신탁, 정치자금법 위반 등이 거론되었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도 김 후보자에 버금가는 스펙을 자랑했다. 임 후보자의 아버지는 매형 회사에 위장 취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임 후보자의 부친이 후보자 매형의 회사에 빌딩 관리인으로 등록돼 1999년부터 12년간 매달 100만원씩 월급을 받아왔으나, 부친의 해외여행이 매우 잦아 사실상 근무를 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회삿돈으로 월급을 준 것이다. 이에 임호부자는 “매형, 아버님과 상의해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회삿돈 횡령이자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는 범법 행위에 대해, 소박하게 가족회의라도 열려나 보다. 뿐만 아니라, 업무 관련성이 있는 직업에 1년간 취업이 금지돼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3월 지식경제부 1차관을 그만둔 뒤 두달 만에 로펌에서 고문으로 일했다.  50일동안 그가 받은 고문료는 5천 3백만원, 하루 백만원 꼴이다.

김금래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이미지 출처; 아이뉴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이미지 출처 ; 머니투데이)



 이들의 화려한 스펙을 훑으며, 청문회라는 자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는 어떤 자리인가? 후보자가 해당 공무직에 적합한 인물인지 따져보는 자리이다. 여기에서 ‘적합성’의 여부를 판단할 기준은 후보자의 능력이다. 즉, 청문회는 후보자가 해당 자리를 맡을만한 능력과 기타 요건을 갖췄는가를 검증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살리려면, 김금래 후보자는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용될만한 능력이 있는지, 앞으로 여성가족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해 검증이 있었어야 했다. 의료 민영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임채민 후보자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건복지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에 대한 문답이 이뤄졌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검증은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능력 검증은커녕, 청문회는 온갖 비리와 의혹으로 얼룩져 버렸다. 온갖 범법을 저지른 내정자는 청문회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그 자리에 최적화된 사람인지를 따져볼 새 없이, 범법 여부를 검증하는 것만으로 바쁘다. 그러다 보니, 고위 공직자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하향평준화 되어버렸다. 시민으로서의 자격요건을 따져보느라, 그 자리를 맡을 만한 능력이 되는지를 따지는 것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바람이 돼버린 것이다. 후보자가 임용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그 자리를 이끌어나갈 비전과 계획이어야 하지만, 이들이 준비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청문회에서 제기될 비리의혹을 어물정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결국, 나중에 임채민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여 의료 민영화와 관련된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뒤통수 맞았다는 듯이 쳐다볼 수 밖에 없다.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의원들은 청문회에서부터 날카로운 검증을 펼쳤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그저 법을 어기지만 않았다면 ‘땡큐’할 기세다.

  지난 주, 강호동은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탈세 의혹을 받은 직후였다. 고의성이 아니라고 짐작되는 상황에도 그는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밀 수는 없다며 잠정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공인도 아닌 연예인에게도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고위 공직자는 단지 범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시민이면 될 수 있는 자리인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야말로 뻔뻔하게 얼굴 들이밀 수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