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게임 대사가 있다. “버틸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게임 속 유닛이 공격을 받을 때마다 등장하는데, 착 감기는 성우의 목소리와 짧고 강한 문장이 인기를 끌며, 급기야는 공중파 예능에 패러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버틸 수가 없다”는 말을 게임이나 예능에만 가둘 수 없을 것 같다. 대학생과 학부모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8일 ‘대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올 상반기를 강타하며 정치권을 흔들었던 이슈인 ‘반값등록금’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반값’은 없었다. ‘등록금’도 없었다. 대신 ‘선별’과 ‘장학금’만 남았다. 반값등록금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그리고 올 6월에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대대표가 등록금 인하에 대한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결국 말잔치로 끝났다. 정부의 정책은 ‘등록금 인하’ 대신 ‘장학금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학점과 소속 대학에 따라 혜택의 정도가 크게 차이 난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예산 중 일부 금액은 대학의 자구적 노력에 기대고 있는데, 강제성이 없어 실제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국민 사기극이다. @오마이뉴스

반값등록금이라는 단어와, 이 단어가 가져왔던 외침들에 비하면 반쪽짜리 정책이다. 아니, 반쪽도 못 되는 정책이다. 수치 상으로도 반값의 반인 25% 인하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내용 면으로 보면 더욱 암울하다. 소위 ‘부실대학’에는 재정적 지원이 없고-그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돌아간다-, ‘B학점’ 이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 혜택이 줄어든다.

이는 아직 정부가 등록금 문제를 ‘생존’이 아닌 ‘혜택’의 영역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장학금 중 일부를 B학점 이상 학생에게만 주겠다는 소리가 나올 수 없다. 물론 ‘B학점’이라는 기준이 크게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등록금을 벌며 학교에 다녀야 하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B학점은 녹록치 않다. 애초에 이번 정책의 초점이 일률적인 등록금 인하보단 소득에 따른 선별적 장학금 지급에 맞춰졌음을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알바를 해야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학생들에게 B학점을 넘겨야 장학금을 주겠다니, 죽겠다는 절박한 외침이 전달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1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2011년 OECD 교육지표’를 발표했다. 한국이 미국에 이어 대학등록금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란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의 고등교육 지출 비율은 1.9%로 OECD 평균인 0.5%의 4배나 된단다. 그만큼 가계가 고등교육을 위해 큰돈을 쓰고 있다는 소리다. 반면 정부가 대학생들에게 지원하는 장학금 비율은 6%로 OECD 평균인 11.4%의 절반 수준이었다.

@경향신문

같은 통계를 보고 이렇게 다른 자료가 나갈 수 있나 @중앙일보

교육과학기술부의 통계가 불편한 진실이긴 했나보다. <동아>는 위 통계와 관련된 기사를 14일자 지면에 아예 내지 않았으며, <조선>은 1면에서 뜬금없는 ‘사교육비 5분기 연속 감소’를 주장했다. <중앙>은 같은 통계를 가지고, 제목을 ‘한국 대졸자 OECD 1위’라고 뽑으며, 편집의 미학을 한껏 뽐냈다. 같은 날짜 <한겨레>와 <경향>이 1면 기사, 사회 톱기사로 다룬 것과 비교되는 편집이다. 굳이 다른 일간지와 비교할 것도 없다. 추석을 앞두고 정부가 등록금 인하 대책을 발표했을 때 <조선>은 ‘대학생 100만명, 등록금 부담 22% 줄어든다.’라는 제목으로 이 정책을 거창히 1면에 소개했다. 여론에 부담이 되는 통계는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보내니, 참으로 불편(不便)하고 부당(不當)한 언론이다.  

추석은 지나갔다.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등록금 부담 완화책을 내며 민심 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민심은 차갑다. ‘죽겠다’고 소리치는데 ‘이 정도면 됐지?’라는 정책을 내니, 민심이 돌아설 리 있겠는가. 세계 2위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는데 장학금이나 찔끔 올려주겠다니, 정말이지, 죽겠다. 답이 없는 정부도, 중요한 건 다 감추는 언론도, 살인적인 등록금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