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탁’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추석맞이 특별기획 대통령과의 대화’ 방송에서 물가상승이 불가항력이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비록 “물가 잡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전제를 달았다. 이대통령의 발언은 정부는 물가잡기에 여념이 없지만 한계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것으로 이전 발언과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물가는 정부의 노력을 비웃듯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 물가상승률은 5.3%를 기록했다. 이는 3년 동안 월별 물가상승률 최고치에 해당한다. 이를 반영하듯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까지도 “무리해서 물가목표 달성 않겠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자연스레 김 총재의 말에 금리인상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 총재 임명식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중수 총재가 악수(幄手)하고 있다. 한은 총재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한은, 금리인상 않는 이유


물가를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는 통화량이다. 통화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물가상승률은 높아진다. 화폐가치 때문이다. 풍작이 되면 농작물의 가격이 내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는데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통화량을 조절하려면 금리를 올려 돈을 은행에 묶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금리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보다는 성장에 중점을 두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리를 높이면 대출이자 또한 올라가기 때문에 기업이 투자하는데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성장에 방점을 두며 고환율, 저금리 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살인적인 물가에도 8월에도 금리를 동결한 건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관세 축소나 정부 비축을 통해 물가를 잡는다고 해도 재정건전성의 문제가 생긴다. 2010년 기준 국가채무는 407조원, GDP의 36.1%에 해당한다. 2009년보다 41조원 늘어난 것으로 0.5%p의 상승률이다. 공기업, 가계부채까지 모두 합산했을 경우 1439조원, GDP대비 140.7%로 현격히 상승한다. 관세축소나 정부비축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낮춘다면, 이와 반비례로 부채는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다. 

금리를 인상하면 대출 이자 상승으로 가계부채를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금리 인상은 대출 그 자체를 막는 역할도 한다. 이자는 늘어나도 추가적인 신규 대출은 줄어든다는 얘기다. 금리를 갑자기 몇 %씩 올리자는 주장도 아니다. 0.25%~0.5% 씩 차근차근 인상하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 된다.

출처=한국경제

 
물가상승, 방관이 상책?

세계경제가 침체를 겪는다면, 무역의존도가 워낙 큰 우리나라에서 의지 할 곳은 그만큼 줄어든다. 정부가 물가와 관련이 큰 금리에 손을 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수출과 재정확충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이용하는 수가 필요 할 수도 있다. 정부 재정 측면에선 물가를 ‘탁’ 잡는 게 오히려 자충수가 된다. 정치적으로는 무능력해보일지 몰라도 재정균형을 위해서는 그냥 두는 게 상책인 경우가 생긴다.
 
역설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물가 상승을 방관하는 게 오히려 정부 재정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세는 직접세와 달리 정해진 게 아니다. 예외가 존재하지만 가격의 10% 내외로 부과되곤 한다. 우리가 무심히 버리는 영수증에 답이 있다. 5500 원인 설렁탕을 점심으로 먹었다면 영수증에는 과세물품가액 혹은 과세매출 5000원, 부가세 500원으로 표시가 돼 있을 것이다. 이 부가세가 간접소비세에 들어간다. 정부 입장에선 500원의 세수가 들어오는 셈이다.

구조적인 물가 인상 요인으로 인해 설렁탕이 6600원으로 가격이 오른다면, 과세물품가는 6000원이며 부가세는 600원이다. 정부 세수가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는 설렁탕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에도 적용된다. 시장 전체로 보면 세수 상승분은 천문학적이다. 간접소비세는 다른 세수와 달리 안정적이라는 매력도 갖고 있다. 게다가 물가상승은 작황이나 기후변화로 국민들이 살 수밖에 없는 식품에서 더 높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간접세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과거에도 이루어졌다. 대표적으로 레이건 정부는 직접세를 줄이고 규제를 풀면서 투자, 소비 진작에 중점을 두려 했다.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면 간접세를 통해 세수가 증가 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경기는 활성화됐지만 정부재정은 오히려 악화됐기 때문이다. 

MB노믹스도 마찬가지다. 고소득층에 대한 직접세와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며 투자를 증진시키려 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신통치 않았다. 기업들의 설비투자 증가는 미미했고, 수출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내수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무역수지 흑자는 최대를 기록했지만 수입은 그만큼 적어 관세 수입은 그대로인 셈이 됐다. 그동안 국가부채는 늘었다. 정부가 부채를 줄일 한 수를 고심 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물론 정부의 이 한 수는 국민들에겐 악수(惡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