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친척 혹은 부모님의 지인들을 만나면 꼭 듣던 소리가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큰 사람 되라.”라는 말이다. “제가 큰 사람 되면 아저씨한테 뭐가 좋아요?”라고 물으면, 대답도 한결 같았다. “그래야 내가 덕을 보지!”라는 대답이었다. 그 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하겠다. 큰 사람이 되는 것과 지인이 덕을 보는 것의 상관관계를 MB정부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답 없던’ 정부가 오랜만에 답을 찾아준 셈이다. 임기 말이 되며, 하나하나 드러나는 이 정부의 비리 이야기다. 애초에 청렴도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정부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도 비리는 깊고, 또 넓었다.

28일, MB정부의 홍보수석이었던 김두우 씨가 검찰에 구속되었다. 부산 저축은행그룹 구명 건과 관련해 거액의 돈을 받은 혐의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도 이국철 SLS그룹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혐의는 공직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사촌형이 4대강 투자를 빌미로 3억여원을 받아 수사를 받고 있고, 이 대통령의 사돈인 황 모씨 역시 이 대통령의 친인척임을 강조하여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금품수수로 구속된 김두우 전 홍보수석 @연합뉴스

공직자와 친인척 할 것 없이 골고루다. 나쁜 일은 한 번에 터진다더니, 이명박 대통령 입장에선 딱 그 꼴이다. 음식이 썩으면 파리가 꼬인다. 마찬가지로 권력이 썩으면 사람이 꼬인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자에게는 두 가지 의무가 있다. 썩지 않을 의무와, 자신의 측근들에게 충분한 교육과 경고를 할 의무다. 더군다나 ‘부패척결’과 ‘공정사회’를 기조로 내 건 정부라면, 그 의무는 더 강하게 적용된다. 비리에 대해 개인 탓만 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듯, 28일 국무회의에서“권력형 비리나 가진 사람의 비리를 아주 신속하고 완벽하게 조사해 달라.”고 언급했다. 그에 대한 대책으로 청와대는 법무부, 경찰청, 총리실, 금감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의 책임자가 모두 모인 회의를 월 2회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사건의 초기부터 검찰의 수사 착수를 지시하겠다는 말도 들린다.

전에 없던 고강도 대책이다. 그러나 그 대책 역시 미심쩍다. 애초에 측근 비리 때문에 만들어진 대책기구를, 권력의 최측근들로만 구성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임태희 대통령 실장은 “참석한 기관장들은 저를 포함, 어느 누가 의혹 대상이 되더라도 스스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밝히기로 결의까지 했다”고 말했다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남 일도 숨기는 마당에 본인들 일을 어떻게 의혹 없이 다룰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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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사정기관에서 근무했던 은진수 전 감사위원, 김경한 전 법무장관 등 역시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사정기관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그들의 ‘대책회의’가 얼마나 신뢰성 있는 기구가 될 지 의심스럽다. 거기에 사건 초기부터 검찰이 수사에 나서겠다니, 이 대책이 오히려 사건 초기에 상황을 진화시키겠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소위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인간관계와 공직생활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 일”라고 말하며 이번 비리 사건들을 ‘인간관계’문제로 절하시켰다. 측근 비리가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썩은 권력’과, ‘정권 전체의 문제’라는 본질을 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참으로 배울 게 많은 정부다. 큰 사람이 되면 주변인들이 덕을 본다는 서글픈 진실부터, 덕을 본 사람은 있지만 정부 문제는 아니라는 변명까지. 여기에 그 덕을 본 사람들이 무죄나 약한 판결로 면죄부까지 받는다면, 그야말로 권력 비리 3종 세트 완성이다. 이 비리 세트가 어디까지 완성될 지, 또 더 배울게 있을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보고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