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되풀이되고 말았다. 외신에도 해외 토픽으로 소개된다는 한국의 ‘노벨 문학상 소동’ 말이다. 전부터 언론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는 그 어느 때보다 시인 고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들썩였다. 그래서일까. 상이 스웨덴 작가로 돌아가자 국민들의 실망도 그 어느 때보다 큰듯하다. 그 실망감과 동시에 사람들은 한국 문학이 얼마나 위기인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느라 정신없다. 우리 문학이 노벨상을 타지 못한 것을 발판 삼아 한국 문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상을 수상하기 위해 우리 문학이 풀어야할 과제 등 제목은 다르지만 비슷한 내용을 담은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결론은 노벨 문학상이 남겨준 한국 문학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한국 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왜 한국 문학의 위기를 노벨 문학상의 수상 결과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진정 노벨 문학상이 우리 문학의 위기를 판가름 해 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또한 한국 문학의 위기를 외치는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 문학의 위기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의 노벨 문학상 집착증

‘한국 문학, 노벨상서 또 고배’ 노벨 문학상의 시상이 끝나자 이와 같은 제목의 기사는 끊이질 않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또’라는 표현이 몹시 거슬린다. 수상자가 발표되기도 전에 쏟아져 나오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기사와 수상 실패 후 ‘또, 역시나, 이번에도’와 같은 탄식조의 기사는 정말이지 보기 거북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언론 보도에 쉽게 동조되고 만다. 시인 고은이 수상하지 못한 것이 그리도 아쉬운 것일까, 아니면 ‘또, 역시나, 이번에도’ 노벨 문학상을 타지 못한 것이 이토록 화가 나는 것일까. 여하튼 수상 실패 후 국민들의 한숨과 탄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왜 노벨문학상에 집착할까? 받으면 좋지만 못 받았다고 애석할 필요까지 없다는 생각은 순진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 노벨문학상의 힘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수상자가 나오면 한국 문학의 위상, 더불어 한국의 위상은 상승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수상을 계기로 한국 작가의 해외 진출 또한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즉 우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고 싶은 취지는 너무도 ‘인정받고 싶은 발로’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노벨상의 권위는 객관적이나 작품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위대한 작가’가 꼭 노벨상을 받아야 위대한 것인가? 그렇다면 황석영과 김훈은 ‘덜’ 위대하고, 신경숙과 공지영은 ‘모자란’ 작가들인가? 그렇지 않다. 노벨상을 받았다고 최고가 아니다. 분명한건 상의 주체는 과학이나 기술이 아닌 문학이고 이는 서양인들의 시각과 정서에서 간택된다는 것이다. 나는 한 네티즌의 의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이 과연 ‘고이 접어 나빌레라’ 라는 표현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우리 작가들은 충분히 위대하다. 그러므로 우리 문학이 이번 노벨 문학상에 ‘또 고배’를 마셨다 하더라도 우리 문학의 위대함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문학을 제대로 사랑하고 있는가

고은의 수상 실패를 안타까워하면서 고은을 대표하는 작품을 단박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렇듯 국민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의 작품이 서양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을 우리는 왜 그리도 분노하고 있을까. 분노할 자격은 있는 것일까.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동네 서점은 문을 닫기 일쑤다. 일부 스타 작가를 제외하고 문학을 하는 많은 이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부분에는 제대로 된 관심조차 두지 않는 우리가 노벨 문학상을 바라는 것 자체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질적 수준을 지속적으로 견인시킬 수 있는 주체는 노벨 문학상이 아니다. 우리는 노벨 평화상이 우리의 인권을 신장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 이상 우리는 한국 문학의 위기를 외부에서 찾지 않도록 하자.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문학 작품을 물었을 때 우리가 자신 있게 작가와 작품을 말할 수 있다면 좀처럼 쉽게 우리 문학의 위기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