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카페·빵집·영화관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환하게 웃는 얼굴과 상냥한 목소리를 가졌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즐거워서 웃고, 슬퍼서 울고' 그렇게 나만의 것으로 여겼던 '감정관리'는 이제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감정’은 누구의 것인가. 개인의 삶을 지배하는 감정을 넘어, 공적인 삶의 영역까지 침범한 감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여기 아주 솔직하고 친절한 책 <감정노동>을 살펴보자.

앨리 러셀 혹실드 저, 감정노동(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감정노동 : 사람들이 개인의 기분을 다스려 얼굴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통해 외부에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하는 말
우리에게 ‘육체노동’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그런데 여기 ‘감정노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육체노동’만으로도 피곤한데 여기에 ‘감정’을 덧붙이라니, 듣기만 해도 어깨가 무겁다.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대표는 항공 승무원이지만, 기업의 총책임자부터 최저시급 4320원을 받고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나 자신의 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왜 그토록 피곤한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책에서는 그 이유가 우리는 ‘감정 법칙’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감정 법칙을 통해 누가 정해준 적도 없는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사람을 대할 때 ‘이 정도면 되겠지’하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흔히 말하는 ‘예의’를 지키려 한다. 이런 식으로 예의를 갖추다보니 스스로 감정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레 생겨나는 감정을 통제하다니, 우리 참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느낌을 갖고 싶어서 애를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갖고 싶지 않은 감정을 막거나 약화시키려고 애를 쓴다.
가끔 우리는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과 마주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 혀를 끌끌 차보기도 하고 속으로 흉보는 게 전부일 것이다. 속 시원하게 한소리 해주고 싶지만 우리는 화를 꾹 참고 만다. 이는 생활 속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하나의 예다. 일상에서 이 정도면 직장에서는 말 다했다. 책에서는 항공 승무원의 예를 들었다. ‘그 사람이 여러분이 아닌 사람과 어디가 닮았는지 생각해보세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서 여동생의 눈을 보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갖고 싶지 않은 감정도 가져야 하며, 굳이 생기지 않는 감정을 이렇듯 만들어 낸다. 이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의 연속인가.

출처 :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노동자는 감정을 도구로 쓰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요구받았다. 그 자부심이 무너지면서, 노동자는 감정이라는 도구가 과용되고 과소평가되고 있으며,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노동자를 단지 ‘감정을 제공하는 사람’ 혹은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에 기막힌 예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제가 뚜껑이 열린 건 한 여자가 자기 찻잔을 들더니 제 오른팔에 부을 때였습니다.’ 이는 책에서 표현한 대로 ‘로봇이 되어간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그저 노동자는 ‘더 나은 감정’을 제공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렇다고 그만큼의 대접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누가 말해준 적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자를 말 그대로 ‘푸대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더 이상 ‘진심으로 친절’할 수 없는 것이다.

‘감정노동’에 대해 알려준 ‘감정노동’이라는 책. 이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동안 우리가 작게나마 했던 어리석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난 이 정도의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어, 서비스업이라는 게 다 그렇지 뭐’ 몇 푼 안 되는 요금을 지불하고, 그것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접어둔 채,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한 것 마냥 우쭐한 적이 있었다. 또 콜서비스를 받을 때 수화기 너머로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이 들려오면, 상담원이 그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되세요. 고객님’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면 괜히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우리가 노동자의 자부심을 무너뜨리는 사람이었다니,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