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길었던 중간고사가 드디어 끝난 대학생 A씨, 이번 시험은 그래도 아주 망친 과목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과목 성적이 예상보다 너무 낮게 나온 것을 발견했다. 시험지를 확인하고 잘못된 게 없는지 보러가겠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 가라사대, “성적 확인하러 찾아왔는데 이상 없을 경우 1점 감점합니다. 알아서 잘 판단하세요.” 이렇게 A씨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다. 시험 성적이 예상과 다르게 낮게 나오는 일, 그리고 시험지를 확인하러 교수님이나 조교의 연구실을 찾는 일은 매학기 반복되는 대학생의 연례행사다. 최근 과거에 비해 채점에 대한 이의 제기가 많아지고 심지어는 학점을 변경해 달라는 문의가 많아지면서 나온 고육지책이 바로 ‘이상 없을시 감점’과 같은 답안지 문의에 대한 인센티브 구조다.

출처 : http://blog.daum.net/gkgmgkgkg/26



억울하면 교수하세요.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J씨는 지난 학기에 강의 중 교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답안 확인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답안에 이상이 없을 경우엔 감점합니다. 답안 확인시켜 줄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려는 거니까 이해하세요.” 해당 강의의 시험은 서술형 시험이었다. J씨는 결국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답안지 확인이 애초에 명시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3학년 K씨가 수강했던 과목의 교수는 “답안지를 아예 다 버렸으니 확인할 생각은 말라”고 수강생들에게 말한 바 있다.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치른 시험, 제출한 과제물 등의 세부 성적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알파벳 하나만을 성적으로 부여받는 일도 비일비재다. 한양대학교에 다니는 M씨의 사례는 매우 전형적이다. “최종 학점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나와서 어떤 분야에서 뭘 못했는지 알아야 수긍이 갈 것 같았지만, 교수님은 상대평가여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그러니까, 결국 상대평가에서 어떤 점이 밀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는 얘기다. 수업이 상대평가라는 사실은 학기 초부터 학생들 모두가 알고 있다.

확실히 드러난 교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이 문제는 중복 답안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난 2번을 생각하고 낸 문제니까 2번만 답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억울하면 교수하세요.” 건국대학교 4학년 S씨가 새내기 때 겪은 억울한 이야기다. 억울하면 교수하라는 말은 쉽다. 그러나 억울하다고 해서 학생이 교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만큼 그 말이 ‘말도 안 된다’는 얘기다.


강의도 ‘후학 양성’도 교수님의 업무 아닌가요?

물론 교수의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빗발치는 문의가 꽤나 ‘귀찮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 강의 말고도 연구나 행정 업무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명백한 사실은 그들이 맡은 강의도, 또 강의 진행과 연관된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중요한 교수의 업무라는 것이다.

일방통행으로 진행되는 수업 방식, 또 알파벳 하나로만 제시되는 성적, 제출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과제물. 이러한 대학 강의의 현실을 바람직한 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점수 외에는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다른 학우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을 뿐 무엇이 부족해서, 또 무엇을 잘해서 그런 점수를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러한 막무가내 평가로는 학생들의 학문적인 능력 향상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것은 강의를 위한 강의, 평가를 위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EBS 캡쳐



이상적인 대학을 꿈꾼다

두 그룹의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A그룹의 아이들은 문제를 푸는 동안 ‘잘했다’ 그리고 ‘똑똑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B그룹의 아이들은 문제를 푸는 동안 ‘열심히 노력하는구나’ 라는 격려를 들었다. 문제를 모두 다 푼 후 두 그룹의 아이들을 선택 상황에 놓았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볼 것인지, 아니면 비슷한 수준의 문제를 다시 풀 것인지. 또 다른 아이들의 점수와 틀린 문제 풀이 방법 중에 무엇을 찾아볼 것인지. B그룹의 아이들이 더 어려운 문제와 문제 풀이법을 선택한 반면, A그룹의 아이들은 비슷한 수준의 문제와 다른 아이들의 점수를 선택했다. A그룹 아이들은 결과만 강조된 교육 환경 속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보다는 익숙한 것에 머무는 걸 선호하게 됐고, 또 자신의 발전보다는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추구하게 됐다.

이 심리학 실험이 의심하게 하는 바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A그룹의 아이들을 양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진정한 교육과 성장, 지적 탐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이상적인’ 대학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