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과는 ‘문과 속의 공대’다. 다른 문과생들이 글이나 논문을 읽고 페이퍼를 제출할 때, 경제학도들은 그래프를 그리고 수식을 세우고 문제를 푼다. 들고 다니는 두꺼운 원서 교재에서부터 포스가 남다른 그들은 행동도 특별하다. 수업 전에 강의실 앞에 줄을 서고, 쉬는 시간마다 교수님에게 문제 풀이에 대한 질문 공세를 쏟아 낸다. 보고서 쓸 일은 거의 없되, 그래프를 그리고 수식을 세우고 문제를 풀고 이런 공부를 언제나 잡고 있다. 이쯤 되면, 문과 속의 외계다.

그러나 그곳에도 변종들은 존재했으니, 바로 스스로 경제학에 적응을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이름만 경제학도’들이다. 누군가는 스스로를 ‘쩌리 경제학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다.) 고등학생 때 기대하던 것과 다르게 수학 위주로 짜인 커리큘럼에 적응을 포기한 사람, 적성은 고려 못하고 점수 맞춰 대학에 왔다 낭패를 본 사람, 경제학이 미치도록 좋지만 그래도 어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사람. 수많은 부류의 경제학도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이 사는 경제학 세상을 만나봤다.

나도 경제학도다

이민지(24,가명)씨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대학에 와서 한 번도 전공 공부를 즐기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커리큘럼이 그렇게 짜여 있어서, 경제학에 필요한 수학적인 기초를 한 학기 만에 급히 끝내야 했어요. 그리고 체감하기 힘든 낯선 개념들이 끝도 없이 튀어나오고요. 수학이랑 친하면 경제학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전 사실 아니었어요.”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 중인 이번 학기에도 그녀는 경제학 과목을 네 과목이나 듣는다. 졸업 요건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을 덜 쓰는 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짰다.
 
“사실 매 학기 그렇게 하고 있어요. 주로 수리적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제사’ 과목을 주로 찾고요. 정책 관련 과목이나, 이도저도 안되면 학점 받기 그나마 쉬운 영어강의를 수강합니다. 영어강의는 절대평가라서 상대적으로 좋은 학점을 받기가 용이하거든요.”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박민호(25)씨도 수학의 벽에 부딪힌 경제학도 중의 한 명이다.
 
“고2 때 아담 스미스가 쓴 국부론을 읽고 재미있어서 경제학을 전공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 보니, 경제학은 내가 생각했던 경제학이 아니라 수학이더라고요.”
 
그는 수학과는 스스로 거리를 뒀지만, 필요상 금융과 관련된 경제학 과목을 많이 수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졸업을 위한 ‘꼼수’는 있었다.
 
“복수전공 활용해서 졸업에 필요한 경제학 전공학점을 12학점이나 줄였어요. 또 계절학기를 이용해 타 대학 교류학점을 수강하면 우리학교에서 들어야 하는 전공학점이 줄어들더라고요. 그 방법도 써 봤죠.”


수학 말고 경제를 공부하고 싶어

수학의 벽에 부딪힌 ‘쩌리 경제학도’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들이 경제학과 애정 아닌 애증의 관계를 맺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어려워서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이 그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더 크다. 우리 주변의 경제현상을 다루고 이해하는 공부를 할 줄 알았던 경제학과에서 모델에 맞춰 문제 푸는 기술과 수학적 분석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경제학도들은 이러한 이유로 학문 자체에 흥미를 잃기도 한다.

수학이 많이 들어가는 과목을 아무래도 기피하게 된다는 박민호 씨는 경제학에서 좋아하는 분야가 따로 있다.
 
“경제 현상을 잘 알더라도 좋은 학점을 받으려면 수학을 잘 해야 해요. 어느 정도 이해가 됐더라도 수학에서 막히는 순간 학점을 잘 받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수학적인 능력보다는 경제학의 역사와 또 이론적 함의를 다루는 경제학설사 분야를 더 좋아해요.”

흔한 경제학도의 필기

이민지 씨는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그나마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교환학생 시절 때였다고 이야기했다. 미국 대학의 경제학 공부는 한국 대학에서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미국 학교에서 들었던 경제발전론 수업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 과정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도 하고 레포트를 쓰기도 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수업이었어요. 우리나라 경제학 수업은 수리적 문제 풀이에 치중하는 게 커요. 한국 대학에서는 강의와 시험으로 끝나지 토론, 레포트는 없거든요. 또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우리나라에서 연구나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고요.”

복수전공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이혜미(24,가명)씨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수학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한 경제학 기본 과목인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까지 수강한 후 미국으로 날아갔다. 국내 대학과 살짝 다른 풍토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금 교환학생을 와 있는데, 여기서 취득한 학점은 취득 여부로만 성적에 반영되거든요. A를 받느냐 C를 받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영어로 공부하는 게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적 평가 방법 덕에 좀 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직까지는 경제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요.”


해결되지 않을 모순

사실 학문으로써의 경제학 연구에서 수학을 빼놓을 수는 없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경제학 연구를 업으로 삼으려면 실제로 모델을 만들고 현실을 계측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경제 현상을 이해하고 싶은 경제학도들과 경제학자를 길러내고 싶은 경제학과 사이의 모순은 어쩌면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은 학자를 배출하는 기관보다는 사회 진출을 위한 정규 교육 과정 기관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 말하는 대로라면, 수요가 있다면 그에 맞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쩌리 경제학도’들이 수학에서 자유로운 경제학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