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수업시간. 넓은 강의실에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수업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오신 교수님, 연단으로 올라 가신다. 하지만 강의가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칠판 앞으로 스크린이 내려온다. 그리고 그 위에 띄워지는 파워포인트. 교수님과 학생들 사이로 파워포인트가 띄워진 스크린이 놓이자, 그제서야 수업이 시작된다.

 언제부턴가 파워 포인트(PowerPoint, PPT)는 대학 수업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빔 프로젝트 등 수업에 쓰이는 교구가 다양해지고, Microsoft Office를 비롯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대학 수업에서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현재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은 단순히 수업 도구의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에 담긴 시각적 요소는 수업의 이해를 돕는다. 주요한 수업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거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업 내용을 설명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업이 생기면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초래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멀티 플레이어가 되길 요구하는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위주의 수업 방식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위주의 수업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들의 집중이 분산되는 것이다. 파워 포인트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교실에서 수강생들은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파워 포인트의 슬라이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고 필기하는 동시에 귀는 교수님을 향해 열려있어야만 한다. 텍스트로 도배된 슬라이드를 받아 적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100% 수업 내용에 집중하기란 힘들다. 

 학생들의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몇몇 교수님들은 수업 시간 전후로 사이버 공간에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자료를 업로드 해 놓으신다. 대부분의 학생들도 이런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자료를 공유하길 거부하는 교수님도 계시다. ‘수업은 제대로 듣지 않고서, 시험기간이 되면 자료만 다운받아 공부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가 주된 이유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필기는 더욱 절박해진다. 슬라이드에 담긴 내용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다. 그 내용이 시험에 출제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필기하지 못하면 시험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슬라이드에 담긴 텍스트가 많은 수업이면, 교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필기하는 데에만 주력하는 학생이 생기기도 한다.



학생과 교수, 수업의 중심에서 밀려나기도..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은 수업에 활용되는 도구의 차원을 넘어 수업의 질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친다. 교수님의 육성을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던 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교수님께서 수업을 하시면, 수업내용을 스스로 해석한 후 그 내용을 공책에 필기하곤 했다. 그렇게 학생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강의를 소화해냈다.

 하지만,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수업방식은 학생이 수업을 수동적으로 수강하게 만든다. 파워 포인트에는 교수님이 준비한 수업 내용이 압축적으로 요약되어 담겨 있다. 수업의 내용이 이미 가공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이렇게 정리되어 제시된 자료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미 가공되어 완성된 자료 앞에 개인의 생각이 끼어들 여지는 적다. 수업의 내용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거나, 스스로의 방식으로 구성해내는 등의 능동성을 발휘할 틈이 사라진다. 이렇게, 학생 스스로 탐구해 나가는 학문의 넓이와 깊이는 제한되고, 수업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태도에 익숙해진다.

 학생뿐만이 아니다. 교수마저 수동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간혹 지나치게 파워포인트에 의존하여 수업을 진행하시는 교수님을 목격할 수 있다. 몇몇 교수님 혹은 강사님은 슬라이드의 내용을 그대로 읽으면서 수업을 진행하거나, 슬라이드에 나와있는 내용이라며 세부적인 설명을 생략하기도 한다. 그 순간, 파워 포인트는 수업의 도구가 아니라 수업 그 자체가 된다. 파워 포인트에 담긴 텍스트가 수업의 중심이 되고, 교수님은 수업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리는 상황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한다.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도구로서 기능해야 할 프로그램이 수업의 중심을 차지해버리고, 수업이 중심이어야 할 학생과 교수가 수업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도구로 인해 수업 전달 방식이 편리해져도,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까지 편리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학문에 대한 공부는 힘들고 지루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과 교수는 주체적으로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도구로서 다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