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나를 시험한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다. 과자 봉지만 치우겠다고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시험기간이라 모처럼 공부 좀 하려는데, 책상이 도무지 공부할 상태가 아니었던 것. 굴러다니는 큰 봉지 몇 개만 치우자는 게, 책상 정리를 하게 되고, 급기야는 방 청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평소에는 “방이 돼지우리냐!”라는 말을 듣고서도 하지 않던 방 청소가, 시험기간이 되니 왜 갑자기 재미있던지. 그리고 청소도 했으니 잠깐만 쉬었다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은 게 두 번째 실수였다. 관심 없던 웹툰들을 왜 붙잡고 있었던 것이며 쏟아지는 뉴스는 왜 그리도 많은지! 처음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2시간이 지나서 생각한다. ‘아, 나는 왜 이럴까!’
정확히는 ‘나는 왜 이럴까’가 아닌 ‘우리 왜 이럴까’였나 보다. 도서관에서 만난 대학생 J씨(24)는 “시험기간이라 아침 일찍 공부하러 왔는데 평소엔 안 보던 신문들 보느라 시간을 다 썼다.”고 말했으며, K씨(23)는 “오전 내내 평소엔 연락도 안하던 애들이랑 문자를 했다.”며 자책했다. 오죽하면 한 주간지에 “XXXX(주간지 이름)>은 왜 시험기간에 더 재미있나요?>라는 문답이 실렸겠는가. 그래서 알아봤다. ‘아, 우리는 왜 이럴까?’
장애물,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앞서 언급한 주간지에선 이 심리를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로 설명했다. 부모님들이 반대할수록 연인들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문의 관계와 부모의 반대라는 강력한 장애물을 앞두고 사랑이 깊어진 것처럼 어떤 일을 하는데 장애물이 있으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진다는 것. 시험이라는 큰(?) 장애물을 앞두고 벌어지는 우리의 심리를 일정 부분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으론 평소 보던 주간지가 시험기간에 더 재밌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평소에 하지 않던 청소가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마음에도 자석이 있다, 심리학적 장 이론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의 이론이다. 같은 극끼리 밀어내고 다른 극끼리는 당기는 자석처럼, 인간 심리에도 그런 속성이 있다는 것. 좋아하는 대상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반대로 꺼리는 대상은 나를 밀어낸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적용해 ‘시험기간에 평소에 안 하던 딴 짓하는 심리’를 설명하자면, 딴 짓, 이를테면 청소나 웹툰 보기는 평소에는 아주 약하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대상이다. 그러나 시험기간에는 이 시험이라는 대상이 우리를 밀어내는 거대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즉 평소에는 끌려가지 않을 작은 인력이지만, 거기에 시험이라는 힘이 더해져 그 작은 인력에도 우리가 끌려가게 만들어준다는 분석이 이 ‘심리학적 장 이론’인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이론으로도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웹툰 보기나 친구와의 연락 같은 것은 ‘약한 인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청소도 과연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인가? 오히려 우리를 밀어내는 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변명 만들어 놓기, 귀인이론
이 심리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으로, 귀인이론이 있다. 귀인이론은 ‘자신이나 타인의 성공이나 실패와 관련한 행동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에 대한 이론’으로 정의 내려진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딴 짓을 한다. 바로 시험을 망했을 때 변명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또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시험을 잘 봤다면, 본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귀인을 하기 위해서! 그런 방어기제를 만들기 위해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딴짓을 하며 시간을 버린다는 것이 바로 귀인이론이다.
이처럼 시험기간에 공부는 안 되고 딴 짓만 떠오르는 것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만 딴 짓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무지 집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찾아간 도서관에서는, 수많은 학생이 핸드폰을 들고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심리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고, ‘나’혼자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 있을 리 없으니…그러니 오늘도 시험기간에 ‘딴 짓’하는 그대여, 시험이 그대의 인내심을 시험하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그저 우리는 너무나 인간적인, 오 너무나 인간적일 뿐이다.
PS)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딴 짓’하는 중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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