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언급되는 '필수 기초','공통 교양'등의 단어들은 '대학 재학 중 이수해야만 졸업할 수 있는 과목'이라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필수기초라는 이름 아래 글쓰기 강좌나 영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강좌들은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졸업하기 전 한번은 들어야한다. 이 과목들을 이수하지 않는다면 졸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듣고 싶지 않은 과목일지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대학에서는 필수기초 과목들에 대해서 ‘학생들의 기본적 소양을 길러주기 위해 개설 한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필수 과목들은 학생들의 ‘기본적 소양’을 길러 주고 있을까? 위에 언급된 영어나 글쓰기와 같은 과목은 학생들의 ‘기본 소양’을 길러 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필수기초라는 범주 안에 회계나 컴퓨터 같은 과목도 포함이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대학들이 생각하는 ‘기본적 소양’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는가.

‘기업에서만 필요한 학문, 학생들이 왜 돈 내고 배워야 하는가’

중앙대학교 @위클리코리아

중앙대학교에서는 공통교양으로 회계학을 지정했다. 공통교양은 계열에 상관없이 반듯이 이수해야하는 교양필수이다. 그렇기에 회계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문대학생들이라 할지라도 수강해야만 한다. 기존에 경영대 학생들의 필수과목이었던 회계학이지만 이제는 중앙대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회계를 알아야 한다.

회계학이 필수로 정해지게 된 배경에는 전 두산그룹 회장인 중앙대 박용석 이사장의 독특한 교육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기업인들에게 ‘중앙대 애들 뽑아 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 이런 평가를 받는 게 내 목표다”라며 기업가 성향을 드러냈었다. 또한 박이사장은 “예술을 하는 학생들도 대차대조표는 볼 수 있어야한다”라면서 회계학을 공통교양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췄었다.

회계학의 공통교양 지정으로 인해 중앙대에는 회계교육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또한 재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회계학의 부족한 공급을 채우기 위해 교수 채용이 늘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앙대의 회계학 공통교양 지정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서울대 장덕진교수는 "기업에서만 필요로 하는 학문을 왜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배워야 하는가"라고 맹비난했다.

컴퓨터가 필수 기초?!

컴퓨터

춘천에 위치한 한림대는 필수기초 수업으로 컴퓨터를 지정한다. 포토샵, 워드, 파워포인트, 스프레드시트의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만 학기마다 개설되지 않는 수업도 있고 새로운 컴퓨터 과목이 개설되기도 한다. 졸업하기 전 언제든지 수강하면 되지만 일학년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과에서 임의로 지정해 기본 시간표에 포함시킨다.

프레젠테이션 강의에서 학생들은 지정된 시간 안에 발표를 해야 하고 스프레드시트 강의에서는 함수를 외워야한다. 한림대 사회과학 계열의 1학년 K양은 “전공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강의이고 우리들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과목들이 아니지만 이러한 과목들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그 이유를 “1학점인 이 과목들은 다른 강의들과 마찬가지로 A부터 F까지의 학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시간을 덜 소비할 수 있는 강의, 쉽게 이수할 수 있는 강의의 교수님을 찾는다.”고 말했다.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 또한 전공에 관계없이 컴퓨터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지난 2007년부터 한동대에 재학하는 학생이라면 컴퓨터 ․ 전산관련 과목을 4개 이상 수강해야 한다. 이로 인해 이공계 계열이 아닌 학생들 중에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컴퓨터 관련 인터넷 강의들을 수강하는 학생도 있는 등, 학생들에게 이중의 부담을 주고 있다.

대학이냐, 취업 준비기관이냐

회계와 컴퓨터. 학생들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 온 대학에서 ‘졸업’을 위한 학문을 공부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목들은 졸업, 더 나아가서는 사회에 나가 취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대학들은 마치 기사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갑옷을 입는 것처럼 사회라는 곳에 나가기 전 학생들을 무장시키고 있다.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德(재명명덕)...’ 사서(四書)에 포함된 유교의 한 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의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밝은 덕’이라는 명덕을 밝히기 위해 대학은 존재해야 한다.

다양한 학문을 접하면서 더 넓은 배경지식과 깊은 사고를 하길 바라는 대학의 배려는 고맙다. 하지만 과연 그 ‘배려’가 학문을 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재고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