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인디 뮤지션들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로 인디씬이 상당히 풍성해진 느낌이다. 10cm, 옥상달빛과 같은 모던포크류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가운데, 야광토끼, 트램폴린 등에 의해서 전자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그 밖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검정치마 등은 전작과 확연히 다른 앨범을 내보여 이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했으며, 칵스나 바이 바이 배드맨은 데뷔앨범부터 한국적 색깔을 없애고, 당대의 영․미 주류음악을 ‘글로벌’ 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인디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좋은 앨범을 내고 있고, 그 앨범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의 아이돌 편향성을 극복하게 해주는 대안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음악 시장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한 그들이 여전히 대중음악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을 그들의 작품 속에서 구현해내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2011년을 결산하면서 개인적으로 좋았거나, 음악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느껴졌던 10개의 인디앨범을 뽑아보았다. 이 리스트에 오른 앨범들은 올해 더 주목받았어야 마땅했다.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1.장기하와 얼굴들 -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에게 소포모어 징크스란 없었다. 60~70년대의 록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구현해내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한국식 ‘개러지 리바이벌’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전반적으로 싸이키델릭, 훵크, 로큰롤등의 요소가 잘 배치되면서 유기적인 구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장기하의 또렷하고 맛깔 나는 보컬과 건반을 중심으로 하는 유려한 연주는 앨범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특히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는 8분에 가까운 대곡으로 이들의 방향성이 ‘밴드’에 있다는 것을 명시하면서, 오밀조밀하게 잘 짜여진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앨범으로 이들은 단순히 복고적인 질감이나 유머러스한 율동으로 밀어붙이는 키치라는 혐의에서 벗어나서, 한국록의 가장 중요한 밴드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었다.

  
 
 2.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우정모텔

장기하와 얼굴들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이하 구남)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이 2집부터는 밴드사운드를 구현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전작에서 구남이 전자음을 중심으로 하는 신스팝 내지는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록을 구현해내려고 했다면, 2집은 기타사운드를 토대로 단출하지만, 물 흐르는 듯 여유있는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연주는 정말 ‘쫀쫀하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릴 듯하다. 그래서인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듣는 재미’가 쏠쏠하게 느껴지게 한다.

구남의 연주는 폭발하지 않는다. 기승전결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서정적이며, 짧은 호흡의 가사들과 만나면서 세련된 형태를 갖추게 되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형태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음악은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묘하게 노스탤지어를 일으키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음악에는도회적이지 않은, 농촌의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한국적인 정서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3.몽구스 - Cosmic dancer

앨범의 제목만 봐도 방향성은 명확하다. 소년, 소녀들이 수줍게 춤추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앨범을 만들어냈다. 몽구스가 갖고 있던 기존의 서정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운드는 더 명료하고 단단해졌다. 사운드의 변화는 지누 (히치하이커)가 이 앨범을 프로듀싱 한 것에 기인한다. 탄력 있고 훅이 강한 사운드는 그의 공이 클 것이다. 몽구스는 4년간의 공백을 깨고 ‘이 구역의 잘난 놈은 나야’ 라는 것을 아주 명백히 증명해냈다.

<Cosmic Dancer>는 예쁘고 소박하지만 흥겹다.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접점을 명확하게 짚어내면서 이 앨범은 진가를 발휘한다.
 



4.옐로우 몬스터즈 - Riot!

옐로우 몬스터즈는 소위 말해 ‘강한’ 음악을 하는 밴드 중에는 상당한 인지도를 보유한 팀이다. 멤버 세 명은 각자 델리스파이스, 검엑스, 마이앤트메리와 같은 중견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뭉치게 되었는데, 이들은 펑크라는 장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동시대성을 견지하면서,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1집보다 이들은 더욱 더 다양한 장르를 교집합 시켰지만, 그렇다고 구성이 난잡하다는 느낌은 안준다. 투박하고 강하기만 한 록음악이 아닌, 귀에 잘 들어오는 매끈한 헤비니스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존재는 중요하다.




5.허클베리핀- 까만 타이거

수많은 밴드가 탄생하고 사라지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홍대를 꿋꿋이 지켜왔고, 결국 5집까지 내는 중견밴드가 되었다. 5집에는 키보드가 많이 활용되고 전자음이 사용된 게 특징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사운드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단조롭지만 속도감 있는 리프위에 다양한 사운드를 올리고, 그 위에 문학적인 가사를 결합시켜 음악을 완성시킨다.

허클베리핀은 음악이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통찰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까만 타이거>는 지금의 세상만큼이나 모호하고 불안정하고, 어지러운 앨범이다. 그러므로 이 앨범과 소통하려면 꽤 오랜 기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앨범은 소통할만한 가치가 있다.
 
 

6.야광토끼- Seoulight


야광토끼의 1집인 <Seoulight>는 직관적인 앨범이다. 딱 들으면 귀에 잘 들어오는 좋은 멜로디를 담고 있다. 이 앨범은 소위 ‘홍대여신’들 처럼 대책 없이 뻔하거나, 평면적인 감성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운드는 스웨디쉬 팝이나, 윤상과 같이 담백한 전자음악에 가까운데 이것이 읊조리는 듯한 보컬과 굉장히 잘 어울리고, 가사는 “나는 당신만의 작은 아기 토끼씨이고만 싶었는데” 와 같이 개성이 분명하다. 이 앨범의 유일한 단점인 ‘단조로움’을 상쇄시킬만한 사랑스러움이 이 앨범에 가득하다.




7.얄개들 - 그래, 아무것도 하지말자

90년도 냄새가 나는 풋풋함이 귀엽다. 과잉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들의 넘치지 않는 연주와 목소리는 오히려 쿨하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잘 들어보면 굉장히 좋은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있고, 전반적으로 아련하고 복고적인 감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인상적인 훅을 쓰거나 매끈하게 사운드를 뽑아내지 않지만, 결코 시시하지 않다. ‘좋은 음악’은 멋들어진 연주나, 특이한 사운드와 같이 하나의 요소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구성’이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들이 잘 보여준다.
 





8.바이 바이 배드맨 - Light Beside You

바이 바이 배드맨은 한국 밴드로서 지역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보다, 자신들이 직접 브릿팝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의 록음악을 온전하게 구사하는 방법을 택했는데, 그 성과물이 꽤 좋다. 한국말 가사가 나온다는 것을 빼면, 이것은 영국밴드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Light Beside You>는 명백하게 영국 록음악의 전통 아래 있는데, 밴드 명부터 Stone Roses의 곡에서 따왔다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또한 보컬은 오아시스의 리암 갤러거와 발성이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영국 록 음악을 따라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들의 음악에서는 영국의 밴드들보다 ‘더’ 영국 록 음악을 잘해보겠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앞으로 바이 바이 배드맨을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9.The Koxx - Access OK

칵스는 1집 <Access OK>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홍대에서 소위 ‘핫’한 밴드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음악은 홍대의 힙스터 (주류 문화보다 인디 록과 독립영화 등을 선호하는 중산층 젊은이들)들에게 특히 각광받았는데, MGMT나 Bloc Party나 하는 줄 알았던 일렉트로닉 록을 칵스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Access OK>는 탄탄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악기와 전자음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이들의 공연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 하다. 그만큼 강렬하고 원초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단순히 외국의 유행장르를 수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본인들이 외국의 유행을 명민하게 재해석하면서 독특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앨범을 만들어냈다. 각기 다른 사운드를 배열하여 그것들을 조화시키는 방법이 굉장히 탁월해 보인다.
 
 

10.정차식 - 황망한 사내

레이니썬의 보컬인 정차식이 돌아왔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결핍 ‘되어있고 종종 욕구불만에 가까워 보이는 사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이미지는 정차식이 아닌 다른 뮤지션은 쉽게 구현해낼 수 없을 것이다. 단출하게 들리는 악기구성 속에서도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행해지고 있는데, 정차식의 보컬은 어떤 장르를 소화해 내든 간에,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보컬의 힘과 더불어 가사의 무게가 곡을 짓누르지도 않고, 곡의 에너지가 가사를 흐리지도 않으면서 정차식의 메시지는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정차식의 앨범을 듣다보면, 비루한 진실들이 너무나 명정하게 드러나서, 음악이란 결코 유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