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는 약육강식의 시스템에 가장 잘 적응한 동물이다. 필요하다면 짝짓기 상대를 비롯한 동족을 거침없이 잡아먹고 강한 상대에게는 패배를 순순히 인정한다. 사마귀의 이러한 습성은 도덕이 없는 곤충의 세계와 도덕이 존재하는 인간 세계를 대비시켜 ‘인간성’을 부각시키는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마귀의 생리를 인간 세계로 녹여 가르치는 곳이 있다. 바로 개그콘서트의 코너 ‘사마귀 유치원’이다.



사마귀 유치원’은 악인들의 가르침이 가장 유익한 것이 된 시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코너들이 정치 개그를 하고 있는 개그콘서트에서도 ‘사마귀 유치원’이 유난히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유치원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주목한다. 유치원은 유아들의 심신발달을 목표로 하는 곳이다. 처음으로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도덕과 가치관을 배우는 터전이다. 하지만 ‘사마귀 유치원’에서 가르치는 가치는 교과서에 말하는 도덕이 아니다. 교과서적 가치관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마귀 유치원은 ‘마귀들’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교육시킨다.

기존의 가치관이 무용해진 시대. 이 시대에서 새로운 가치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비도덕의 딱지가 붙은 사람들이다. 돈 받는 깡패인 ‘일수꾼’이나 양손에 메스를 휘두르는 ‘쌍칼’을 비롯한 마귀 네 명. 불법과 비도덕을 자행하는 이 선생님들은 한국 사회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아는, 세상을 살아가는 노하우를 어른이들에게 가르쳐 준다.

이 가르침이 당연해 진 시대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모든 가르침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사마귀 유치원의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어른이들’과 ‘시청자들’은 ‘사마귀 유치원’이 제공하는 가르침에 반박하지 못한다. 유치원 아이들이 사마귀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그들이 순진하기 때문이지만, 어른이들이 이 가르침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이미 삶을 통해서 사마귀 유치원의 가르침이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임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 코너에서 쏟아지는 웃음의 6할은 공감이고 4할은 쓴웃음이다.

친구의 자전거에 치였을 때 “보험은 들어놨니?”라고 물어보는 물질 만능주의, 예쁜 여자는 해피엔딩을 가지는 외모지상주의, 최소한의 평범한 삶을 위해서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경쟁 만능주의. 우리는 이런 가치들을 거부할 수 없다. 도덕 교과서의 ‘양보’, ‘용서’ 그리고 ‘관용’같은 가치는 듣기에는 좋지만,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진짜 사마귀 유치원에 아이 보낼 부모들  
새로운 가치들을 더 이상 비웃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기존의 도덕은 유명무실해졌다. 세상은 이 사회에 잘 적응한 마귀같은 이들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사마귀 유치원’이 현실 세계에 있다고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경쟁을 가르치지 않는 대안학교보다 경쟁사회를 쉽게 내면화 하고 견디게 만들어 주는 사마귀 유치원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귀 유치원’은 세속적 가치에 완전히 물든 한국 사회를 딱 잘라 보여주는 단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