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진학률 80%, 연간 등록금 1000만 원, 사립대학비율 85%. 이 같은 비정상적 통계 수치들은 한국 대학의 문제가 곪고 곪아 있음을 상징한다. 2011년은 한국 대학의 이 응어리진 모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던 한 해였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이 시대 대학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했고, 이에 따라 정치권도 나름대로 발 빠르게 대학 관련 정책들을 내놓아 공론화시키기도 했다.


올해의 비정상 – 카이스트

올해 초 4명의 대학생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뛰어난 인재(人材)들이 모여 있다는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인재(人災).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등록금을 부과하는 ‘징벌적 등록금’ 제도와 ‘100% 영어강의’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게 아니라 공부 못하는 학생에게 벌금을 물린다는 발상도 비정상, 한국어가 모국어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국 대학에서 영어만 쓰겠다는 허세도 비정상이다.

그러나 더욱 비정상인 것은 서남표 총장의 독단이다. 위의 비정상적인 제도들을 도입한 것은 서 총장의 ‘독단적 리더십’이었고, 이에 교수와 학생들은 지속적인 반발을 해 왔다. 그러나 서 총장의 독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혁신비상위원회가 제안한 안건들을 깡그리 무시하며 여전히 총장의 자리에 군림 중이다. 교수협의회가 나서서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총장은 귀를 막고 있는 이상한 상황, 올해의 비정상을 수상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카이스트의 현재다.

ⓒ 경향신문



2011년 비정상인 곳은 카이스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5개월간 4명의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추계예대의 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과 더불어 예술 분야 대학 교육의 모순을 되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문예창작학과, 북한학과 등의 폐지를 시도한,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용역을 위시해 끌어낸 동국대와 의대생 성추행사건 처리과정에서 가해자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비난의 대상이 됐던 고려대도 비정상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올해의 쪼잔 – 홍익대

대학의 새벽을 지키는 사람들, 대학 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권리 투쟁이 활발했던 한 해였다. 진짜 고용주인 대학 측과 계약을 맺지 못하고, 용역 업체를 거쳐 파견 고용 형태로 고용된 비정규직이었던 이들 노동자들은 변변히 쉴 공간도 없이 부당한 노동 조건을 감수하며 노동을 해 왔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던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은 큰 불편을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노동자들을 지지한 학생들의 힘이 올해 이들의 노동 조건을 미약하게나마 개선시켰다. 홍익대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같은 시민 모임들도 빛난 한 해였다.

그러나 청소․경비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쪼잔’한 대학과 용역 업체들은 대세를 거스르는 행동으로 눈총을 샀다. 연세대, 아주대 등에서는 용역 업체가 어용 복수 노조를 설립해 노조 활동을 탄압하려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시급 몇 백 원이 아까운 그야말로 ‘쪼잔’한 업체들이다. 하지만 가장 쪼잔한 ‘쫌팽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농성을 주도한 미화원노조와 민주노동 관계자를 상대로 3억에 가까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홍익대다.

ⓒ 오마이뉴스



목원대와 건국대가 강력한 ‘올해의 쪼잔’ 경쟁자였다. 목원대는 학내 등록금 서명 운동을 하려는 학생을 탄압해 ‘광화문 1만배 후 분신 시위’, ‘단식 투쟁’으로 내몰리게 했다. 건국대에서는 대학언론 탄압이 일어났다. <건대신문> 1260호는 1면 편집 문제로 발행되지 않았으며, 편집국장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임됐다.


올해의 막장선거 - 전남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매년 반복되는 각 대학의 막장 선거 논란, 올해는 덜하길 기원했지만 어째 평년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서울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에서 각종 논란으로 선거가 무산돼 내년 재선거를 치르게 된 것 정도는 양반. 우석대에서 나온 ‘성형수술비 지원’ 공약은 무난한 정도. 학교가 선거인명부를 제공하지 않는 등 선거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된 성신여대에서 막장 선거는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올해 최고의 막장선거를 치른 것으로 결정된 대학은 다름 아닌 전남대다. 당선된 선본의 후보 자격 박탈, 재투표 결정, 재투표 투표율이 17%에 그쳤는데도 개표 진행, 대리선거 의혹, 특정 학과 배제 등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하나도 둘도 아니고 셀 수 없이 반복됐다. 그 어떤 막장드라마보다 스피디하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보여준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 올해의 막장선거로 손색이 없다.



올해의 한 줄기 빛 - 서울시립대

첫 ‘반값등록금 대학’이 탄생했다. MB정부가 대선 공약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2008년 시작되었던 반값등록금 운동이 가져온 첫 번째 결실이다. 6월 뜨거운 여름 서울 도심을 달구었던 대학생 시위대의 목소리, 그리고 이에 반응하기 시작한 정치권의 움직임, 마지막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사건은 완성되었다. 인상만 되는 줄 알았던 등록금이 인하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올해의 ‘한 줄기 빛’이다.

이유는 제각각, 인하 폭도 제각각이지만 2012년에 등록금을 인하하는 대학들이 계속해서 추가되고 있다. 강원도립대와 충북도립대는 각각 도 재정 지원을 통한 30% 등록금 인하를 발표했으며, 교과부에 의해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추계예대(10%), 목원대(5%) 등의 대학들도 등록금 인하에 나섰다. 2012년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국가장학금 지급 조건에 대학의 실질적 등록금 5% 인하가 맞물려 있어 등록금 인하 대학은 계속해서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오지랖 - 교육과학기술부

‘감 놔라 배 놔라.’ 올해 교육과학기술부가 딱 그랬다. 부실대학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몇 번이고 계속된 부실대학 명단공개는 수많은 대학, 수많은 대학생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교과부는 9월 5일 전국 대학을 평가해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43개교와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17개교를 선정해 공개하더니, 같은 달 23일에는 ‘특별관리 대상’ 국립대학 5개교를 발표했다. 11월 7일에는 명신대와 성화대학의 퇴출을 확정하고 학교 폐쇄 명령을 내렸다.

부실대학 명단에 포함된 대학들은 교과부의 선정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발 의사를 내비쳤으나, 교과부는 미동도 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으로 하여금 학과개편을 포함한 구조조정은 물론 총장 직선제 폐지 등의 개혁을 강제했다. 아예 ‘구조조정 컨설팅’을 교과부 차원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기막힌 ‘오지랖’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힌 대학들, 그리고 퇴출된 명신대․성화대의 재학생들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대학 구조조정이 옳은 방향이라고 치더라도 그 방식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