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쉽다. 보좌진으로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놨으니 좋은 말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웠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 얘기다. 지난 2일 발표한 신년사와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이 대통령은 좋은, 행복한, 희망적인 언사들을 늘어놓았다. 서민 생활을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학력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고 비정규직 차별 문제도 해결한단다. 특히 새해 국정의 초점을 ‘서민 생활 안정’에 두겠다며, 올해는 물가를 3% 초반에서 잡고,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대통령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다짐 몇 개쯤 늘어놓을 수 있다. 성적 향상, 금연, 다이어트, 규칙적인 생활, 독서량 증진. 그럴듯한 계획들이다. 문제는 보통의 경우, 1년이 지났을 때도 새해 다짐은 다짐으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계획이 실패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말과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아 말 뿐인 다짐이 되는 경우에도, 나름대로 실천은 했지만 방법이 틀린 경우에도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새해 다짐을 성공시키고 싶다면 이 두 가지 오류에 빠지진 않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신년사의 경우는 어떤가.

ⓒ 청와대



일단, 이 대통령이 제시하고 있는 서민 안정의 방법들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이 대통령은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품목별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의 도입을 지시했다.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생필품의 물가를 집중 관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러한 특정 품목 집중 관리 대책은 이미 ‘MB물가지수’의 도입을 통해 시도된 바 있다. 생필품 52개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은 MB물가지수는 이 대통령의 바람과는 다르게 소비자물가지수에 비해 높은 상승률을 기록해왔다. 물가 문제가 품목별로 책임자를 두고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일자리 문제의 해결 방법에도 의문은 따라 붙는다. 신년 국정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금년  예산을 ‘일자리 예산’이라 칭하며, 1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7만 개 이상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012년을 앞두고 채용 및 일자리 급감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기업들에게 일자리 확충을 주문하는 것만으로 채용 훈풍이 불 리가 없다. 또한 안정적인 정규직이 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인턴, 창업, 해외취업을 권장하며 ‘다른 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해답이 되지 못한다. 고교졸업자 채용 우대정책은 고졸에게는 희망이지만, 구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졸자에게는 절망이 된다.

서민 안정을 위해 뛰겠다는 말과 실제 행동의 앞뒤가 안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지난해 전세, 월세가 많이 올라 서민들의 고통이 컸다”며, 전월세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았던 부동산대책은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를 폐지하는 등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방향이다. 가장 최근의 정책이 전월세 가격 안정과 거리가 있다.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실천은 어렵다. 개인의 계획도 작심삼일이기 부지기수인데, 하물며 한 국가의 계획을 달성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어렵다는 이유로 실천하지 않는 계획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 대통령이 2011년 신년 국정연설에서도 3% 수준의 물가 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서민 중산층 생활 향상을 목표로 이야기했던 과거가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정말로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올해의 계획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번엔 말이 아닌 투표로 국민들에게 심판받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작년과 같은 다짐이라도 다시 할 수 있지만, 다음에는 새해 계획을 짤 기회도 없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