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니아 연대기>에서 하얀 마녀 역을 맡아 눈처럼 차가우면서 신비로운 매력을 보여주었던 틸다 스윈튼. 그녀가 2011년 한국 사람들한테 다소 낯선 이탈리아 국적의 영화 <I am love> 로 한국 영화관의 스크린에 등장했다. 영화의 간략하고 객관적인 줄거리는 상류층 집안의 안주인인 '엠마'(틸다 스윈튼이 이 역을 연기했다.)가 아들의 친구('안토니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그냥 이 말만 들으면 흔한 막장 드라마 같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그런 느낌은 전혀 없다. 영화는 내내 아름답다. 이것이 가능한데엔 신비롭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불안정한 감정을 연기한 틸다 스윈튼도 한몫하지만 이야기의 진행과 관련 있는 공간도 한몫을 한다. 영화는 각각의 공간에 주인공의 심정과 관련있는 성격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유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 밀라노(Milano)와 레키 가(家)_ 엠마를 둘러싼 보수적인 환경
 

영화 <I AM LOVE>의 첫번째 장소적배경은 “밀라노” 이다. 영화의 주인공 엠마가 시집을 간 레키 가(家)는 밀라노에 위치한 부유하고 유서 깊은 집안이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집안이다. 레키 가(家)의 장남 탄크레디와 결혼하며 러시아에서 밀라노로 온 엠마는 자신의 원래 이름을 버리고 가문의 안주인 ‘Mrs 레키’로 30여년을 살아 왔다. 고향에는 단 한 번도 돌아간 적 없이 말이다. 30여년을 보수적이고 격식을 차리는 가문의 분위기에 맞춰 살아온 엠마는 무척 우아하고 아름다운 반면 표정이 딱딱하고 생기가 없다.

영화는 보수적인 특징을 가진 도시인 밀라노의 시내 전경을 보여 주며 시작한 후 레키가의 큰 저택을 비춘다.

레키 가(家)의 3대. 포스터로도 사용된 이 사진은 고급스럽지만 딱딱하고 밀폐된 배경과 딱딱한 자세들로 가문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영화는 이런 엠마를 둘러싼 환경을 상징하는 듯한 밀라노의 레키 가의 대저택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첫 번째 배경이자 큰 배경인 밀라노는,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공업이 발달했고 부가 축적 된 도시이다. 밀라노엔 역사가 깊은 기업과 그 가문들이 모여 있으며 깊은 역사 덕분에 피렌체나 로마 같은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비해 굉장히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밀라노에 위치한 레키 가(家) 저택 역시 보수적이고 딱딱한 모양을 보인다. 크디 큰 저택의 겉 색상은 차가운 회색이며 대문과 현관 사이엔 밖과 안을 한번 더 차단하는 중간 문이 있다. 하지만 밖으로 향하는 매개인 창문은 저택의 크기에 비해 굉장히 작아 엠마의 답답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공간: 부엌_ 엠마가 자기 자신을 다시 찾는 공간

자신의 러시아에서의 기억을 잊고 밀라노에서 ‘Mrs레키’로 살아 온 엠마. 그녀의 일상에서 러시아적인 요소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바로 큰아들 에두가 좋아하는 러시아식 생선 스프 ‘우카’. 이것을 제외한 결혼 이전의 자기 자신을 잊고 살았던 엠마다. 그런데 어느날, 부엌에서 안토니오와 함께 러시아 요리를 만들며 엠마가 잊고 있던 것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렇게 1차로 부엌에서 일어난 감정은 안토니오의 식당에서 안토니오가 엠마의 고향을 알고 만든 러시아식 음식을 통해 어떤 감정인지 엠마 스스로 확실하게 인지한다. 그리고 동시에 엠마는 잊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고 딱딱한 현실로 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구를 갖는다.


엠마는 우연히 안토니오와 함께 러시아식 음식을 만들게 되고 오랜만의 설렘을 느낀다.

안토니오의 레스토랑에서 러시아식 음식을 먹고 있는 엠마. 엠마의 감정이 더 확실해진다.



세 번째 공간: 산레모(Sanremo)_ 모든 인간의 고향인 자연이며 엠마가 자기자신으로 다시 존재하는 공간

자신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엠마는 무작정 안토니오를 만나기 위해 그의 농장이 있는 산레모로 가게 된다. 산레모는 태양이 강렬한 지역으로 태양아래 모든 것들이 자신만의 강렬한 색을 띠는 곳이다. 엠마는 산레모에 도착하자마자 러시아 정교 성당을 본다. 그리고 성당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그 앞에 있던 안토니오를 발견한다. 그리고 더 깊은 숲으로 동행한다.
엠마의 도피처인 산레모는 자연, 자유 그리고 엠마가 사랑으로서 존재 할 수 있는 장소를 상징한다. 또 자연은 모든 인간의 고향이므로 고향도 상징한다. 안토니오를 따라 간 산레모의 자연에서 그녀는 상류층의 안주인과 엄마로서의 위치를 잊고 ‘여자’로 안토니오와 만난다. 이곳에서 엠마는 나로, 사랑으로 존재한다.  

이 강렬하고 녹음이 푸르른 도시로 묘사되는 산레모.

산을 따라 난 길을 거쳐 간 곳에서 엠마는 긴 머리를 잘라버린다.




네번째 공간: 런던(London)_ 보수적인 것이 폐기와 엠마의 자유

영화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 런던에서 전통적인 기업이념이 폐기되기 직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엠마는 높은 구두를 벗고 편한 옷을 입은채 집을 나가버린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찾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된 엠마. 하지만 그녀는 ‘Mrs레키’의 현실을 마음대로 버릴 수 없다. 바로 아들 때문이다. 딸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남자의 입장을 가진 아들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 엠마는 쉽게 밀라노와 레키 가문을 떠나지 못한다. 한편 아들은 회사의 일로 간 런던에서 할아버지의 기업 이념이 무시된채 더 큰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름을 중동사업가에게 파는 아버지의 결정에 좌절감과 회의감을 겪는다. 각 나라마다 런던의 보편적 이미지야 다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오래된 가치가 효율을 위해 폐기 되는 곳으로 나온다(반면에, 레즈비언인 엠마의 딸에겐 자유의 공간이다.) 이렇게 좌절해 있던 에두는 밀라노로 돌아와 어머니의 외도 사실을 알고 다시 한번 충격을 받는다.
영화는 엠마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보수적인 아들을 영화에서 제거해버린다. 아들의 장례식이 끝나며 엠마는 답답한 정장과 구두를 완전히 벗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