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여자들은 평범한데 김태희, 한가인 취급받아’
‘공대 여자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남자들이 여왕처럼 받든다더라’

몇 년 전 한 통신사 광고로 공대 여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공대 아름이. 광고에서는 아름이가 엠티를 못 간다고 하자 같은 과의 모든 남자들이 ‘I ♥ 아름’이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고 ‘아름아 같이가’를 외친다. 물론 과장이 보태졌겠지만 남자 10명에 여자 1명꼴로 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대의 현실을 감안하면 마냥 과장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공대 여자들은 광고 속의 아름이처럼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공대 여자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세 명의 아름이들을 만나보았다.

H대학교 기계시스템 디자인 공학과 24살 김태희(가명), K대학교 토목공학과 22살 한가인(가명), J대학교 실내건축학과 24살 송혜교(가명) 양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하 편의상 이들을 김, 한, 송으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 웹툰 '공대녀 라이프' (http://www.estoon.com)



“여신? 그런 거 없어요. 공대 여자는 제3의 성별일 뿐.”


세상엔 세 부류의 성별이 있다고 한다. 남자, 여자 그리고 공대여자. 공대생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그녀들은 이 말에 공감한다. 필자가 공대 여자들에 대한 편견을 물어보겠다며 공대 아름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들은 단호하게 ‘그런 거 없다’고 대답했다.

- 흔히들 공대 여자라고 하면 ‘공대 아름이’처럼 여신 취급 받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는 어떤가?

 글쎄, 딱히 공대에서 여자라고 여신 취급을 받는 일은 없다. 근데 여자 한 명이 같은 과의 여러 남자들과 사귀는 경우는 좀 있는 것 같다.
 평범한 외모의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고 앞에 어떠한 수식어도 붙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여자 취급 받는 것도 고마울 지경이다. 주위에 여신이 몇 명 있긴 한데 까마득한 선배들이라 몇 번 마주친 게 다였다. 그래도 마주칠 때마다 감탄사가 나오기는 했다.
 없다, 예쁜 애들은 이 남자 저 남자가 대쉬하긴 하는데 그냥 그게 다다. 보통 대쉬하는 놈들 치고 괜찮은 놈들이 별로 없거든. 그냥 평범한 대다수의 여자들은 동성취급을 받는다. 가끔 장난삼아 같이 화장실 가자고도 한다.

- 굉장히 의외다. 그런데 보통은 공대 여자들이 콧대 높고 의존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어디서 보니까 공대 여자들과 사귀기 싫은 이유 중 하나가 과제 같은 걸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남자들의 도움에 의존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는데, 이런 편견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나는 ‘여신취급’, ‘의존’, 이런 단어선정 자체에 불만이 있다. 누구에게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모든 대학생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인데, 공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편견을 들어야 한다는 게 속상하다. 오히려 공대 여자들은 타 단과대학 여자들에 비해 더 열심히 하는 편이다.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다. 여신이어도 남자들이 레포트를 대신해주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 하는 게 여신의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냥 예쁘다고만 해서 여신이라는 칭호를 얻는 시대는 갔다. 공부 잘하면 외모는 떨어질지언정 여신 대접 받는 게 요즘 트렌드(?)다. (중얼거리며) 오히려 그 선배들이 베끼면 베꼈지.
 음, 예뻐서 남자들이 주위에 많은 애들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별로 오래가진 않는다. 가끔 얼굴 믿고 콧대 높고 개념 없이 구는 여자애들이 있는데 그런 애들은 우리 과 남자들도 싫어한다. 여자들 사이에서 못 어울리는 거는 당연하고.
 
- 아까 장난삼아 남자들이 화장실 같이 가자고 한다고 했는데, 공대 여자들의 대부분이 시간이 지나면 남성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점점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등교하는 등, 본인이 내가 남성화 되어가고 있구나 싶을 때는 언제인가?

 원래도 외모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아,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곳이 조금 부담스러울 때 ‘내가 남자들과 있는 게 더 편해졌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여신 이야기를 넘어가니 이제 내 얘기를 할 수 있겠다.(웃음) 나와 같이 어울려 다니는 동기이자 친구가 3명 있는데, 좋게 말하면 하나같이 털털하다. 친한 남자 선배한테는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눈도 돌아간다. 심각한 남성화다.
 남자들처럼 예쁜 여자 쳐다보고 그런 건 없고 남자가 남자로 안 보이는 건 있다. 맨날 남자 여자 구분 없이 지내다 보니까 남자들도 동성처럼 편해지고 환상도 깨지고 그렇다.

- 마침 환상이 깨진다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많은 남자들과 가까이서 생활하다보면 남자에 대한 실체(?)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공대에 들어와서 남자들에게서 이건 좀 깬다(?)라고 생각했던 점이 있다면.

 삼일 째 같은 옷 입는 것, 게임처럼 쓸데없는 데에 목숨 거는 걸 보면 한심하다.
 딱히 남자에 대해 환상을 가진 편은 아니라서 실체를 알고 깬다거나 한 건 없다. 그저 담배로 시작해서 담배로 끝나는 선배, 동기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고 저러다 빨리 죽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다.
 작품전 할 때 거의 학교에서 숙식 생활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편한 모습을 보여줄 때 좀 깼다. 잘 씻지도 않고 교실 바닥이건 책상이건 누워서 자고 있으면 환상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뒷담화! 남자들이 의외로 뒷담화를 많이 하는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뒷담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게 좀 싫다.

- 반대로 남자들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된 점도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섬세하다는 거에 좀 놀랐다. 어떤 면에서는 여자들보다 더 세심한 것 같다.
 남자들은 친할수록 서로를 더 막 대하는 것 같다. 동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함의 척도는 욕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남자 동기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는 구나 알게 됐다. 
 (단호하게) 그런 거 없다.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단점만 보인다.

- 다시 공대 여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돌아와서, 공대 여자는 술이 세다고들 한다. 실제로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러한가? 학기 초와 비교하여 주량이 늘었는지 궁금하다.

 집안 내력 때문인지 신입생 때부터 나는 술을 잘 마셨다. 지금은 더 잘 마신다. (웃음)
 술은 늘 수밖에 없다. 우리 과 같은 경우엔 월요일은 한 주 시작이라 먹고 금요일은 한 주 끝이라 먹고 교수가 짜증난다고 먹고 수업이 빨리 끝났다고, 집 가기 섭섭하다고, 수업이 늦게 끝났다고, 해졌다고 먹고 등등 별별 이유를 대며 일주일 내내 술을 마신다. 근데 나는 위가 약해졌는지 오히려 술이 처음보다 많이 약해졌다.

- 또 하나, 공대 여자는 거칠다고 생각된다. 학창시절과 비교하여 성격이나 말투 등이 바뀐 것 같나?

 확실히 언행이 거칠어진 건 사실이다. 학창시절에도 거칠긴 했지만 이정도 까진 아니었는데, 들리는 모든 대화에 욕설이 섞여있는 공대라는 환경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
 좀 그런 게 있다. 아무래도 남자들이 말하는 게 털털하고 욕 하는 사람들도 좀 있으니까 나도 어느 샌가 습관이 돼서 다른 자리에서도 막말하고 있다.

- 엠티를 갈 때 보통 여자가 많은 과에서는 설거지, 요리, 청소, 짐 옮기기 등 모든 것을 여자들이 한다. 남자가 많은 공대에서는 이런 귀찮은 잡일(?)을 주로 누가 하나.

 잡일은 모두 하기 싫어하는 일이니깐 남녀 구분 없이 나눠서한다.
 힘쓰는 일은 남자가 하는 데 여자가 보통 요리를 맡는 건 사실이다.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분담한다. 의외로 합리적으로 일을 나누는 편이다.


▲ 공대얼짱으로 유명한 '유사라'씨




‘여자가 왜 그런 걸 해?’ “그럴 때 마다 속상해요.”

공대 여자는 소수다. 어떤 집단이건 소수자로서의 삶은 힘든 법이다. 특히 한가인 양(가명)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듯 울분을 토해냈다. 여자 공대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어보자.

- 공대는 여자가 적다보니, 여자들끼리의 단합이 잘 될 것 같다. 여자 동기들끼리 똘똘 뭉친다거나, 여자 선후배 사이가 각별하다거나 …

 우리 과의 경우에는 여자 선후배 사이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게 여학생들끼리만 따로 모임을 갖는다. 그 모임은 무작정 술 마시고 노는 것보다는 조언을 해주거나 격려를 해주기 위해 만나는 모임이다. 그리고 매년 여학생 대표도 따로 선출해서 과에서 학생회가 열릴 때마다 여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려는 노력도 한다.
 딱히 여자들끼리 자주 모이고 그런 건 없다. 그냥 시간되는 사람끼리 만나고 오히려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모이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당구나 게임하러 갈 때는 보통 남자들만 가니깐…

- 보통 문과대보다는 이공계열이 취직이 더 쉽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남자 공대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란 말도 있다. 여자 공대생으로서 취업의 벽을 실감한 적이 있는가?

 나는 이미 졸업하고 취업을 한 상태인데, 오히려 여자가 없으니까 더 잘되는 것 같다.
 얼마 전 과사에 갔다가 교수님 한 분을 뵀는데, 그 교수님이 대뜸 그러시더라. “여학생은 취직하려면 유학 갔다 와야 한다.” 그 때 취업의 벽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공대 쪽 에서도 많은 부분들이 있으니까 딱 집어 남자가 쉽다 여자가 쉽다 말은 못하겠다. 예를 들어 시공 쪽은 남자가 편할지 몰라도 디자인은 여자가 잘할 수도 있는 거고… 가끔 작은 회사들은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고 싶은데 여자한테는 못 그러니까 좀 마다하는 회사가 있다. 하지만 규모가 좀 있는 회사는 성별보다 능력과 실력을 본다.

- 얘기 들어보니 다 같은 공대라도 분야별로 취업의 문턱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취업에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데서 무시당한적은 없는가. 예를 들어 공대 여자들은 공학도로서의 자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던지 이런 차별을 실제로 느낀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학교 근처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꼭 무슨 과냐고 물어본다. 토목공학과 다닌다고 하면 10의 10은 되물어보더라. ‘여자가 거길 왜 가?’ (한숨쉬며) 비단 택시 기사님이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이나 심지어 친척 어른도 그런 질문을 했었다. 이젠 설명하기도 지쳐서 그냥 웃고 마는데 처음엔 기분이 꽤나 상했다. 막상 내가 ‘여자가 가면 안돼요?’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더 가관이다. ‘여자잖아’, ‘힘들잖아’ … 여자가 힘든 일은 분명 남자에게도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건 무시하고 ‘여자는 힘들다.’라고 판단해버린다. 이는 우리(여자 공대생)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분명히 공대에선 남녀 차별이 존재하고 나는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렇다고 남자들이랑 비교 했을 때 능력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빨리 능력이 우선시 되는 공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몇몇 어르신이 공과를 노가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 조금 속상하다. 이건 남녀 문제를 떠나서 공대 자체를 무시하는 말이지만, 내가 여자라서 이런 소리가 더 자주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 웹툰 '공대녀 라이프' (http://www.estoon.com)


여자 공대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들의 생각과 달리 녹록치 않은 것 같다. 남자들 사이에서 꽃으로 군림하며 과제도, 생활도 편하게 할 것만 같았는데 실제로는 스스로 다 해결해야하고 보통 여자들과 달리 내숭과 담 쌓으며 정체성을 잃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부딪치는 차별의 시선들과 높은 취업의 문턱과도 싸워야 하는 여자 공대생들. 그녀들의 삶은 우리가 농담 삼아 ‘공대여자’를 웃음거리로 만들만큼 쉽고 순탄하지 않다. 그러나 “다시 학과를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때도 공대를 선택하겠는가”라는 마지막 질문에 모두 "YES"를 외친 그녀들은 이미 공학도로서의 자부심이 가슴 깊이 뿌리내린 것 같다. 그들을 공대 ‘여자’가 아닌 ‘공대생’으로 봐주는 사회가 어서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