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에 바람 잘 날 없다. 된장녀 문화의 상징으로, 또 이스라엘 군비 지원으로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되는 스타벅스다. 이번엔 인종차별 및 한국인비하 논란이다. 미국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국인에게 제공된 음료의 컵에 주문자의 이름 대신 ‘찢어진 두 눈’이 그려진 사실이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퍼진 것이다. 올 초 맨해튼의 파파존스 매장에서 한국인에게 준 영수증에 ‘찢어진 눈(Lady Chinky Eyes)’ 표현이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생한 인종차별논란에 한인사회는 물론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인종차별은 잘못된 것이다. 차별의 대상이 된 한국인들이 열 받는 것도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에 빠진 것이 있다. 바로 한국인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인종차별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같은 영어강사라도 백인 강사와 흑인 강사의 수강료에서 차이가 나고, 백인 강사 선호로 인해 학원, 대학 등에서는 흑인 강사들을 잘 쓰지 않으려고 한다. 다문화 시대라는 말이 강조되는 시대지만 학교에서 차별로 상처 입은 다문화 가정의 혼혈 아이들은 별도로 분리 교육을 받는 게 현실이다. ‘백형’이란 말은 잘 쓰지 않지만, ‘흑형’이나 ‘흑언니’라는 말을 흑인에게 붙이며 개그의 소재로 사용한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 EBS 다큐프라임 '인간의 두 얼굴'



인종차별 문제는 스타벅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대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역사적 배경과 현실의 차별을 반영하는 미디어의 영향 탓에 피부색, 국적에 따른 차별과 편견은 한국 내에서도 점점 공고해지고 있다.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강남역 주변의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길을 묻는 백인과 동남아인을 차별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심리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눈으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사진을 짧게 노출시키더라도 사진 속의 사람이 백인이냐 흑인이냐에 따라 공격성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까지 깊게 박힌 인종차별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쉽지 않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스타벅스의 ‘찢어진 눈’ 사건은 물론, 과거 이주노동의 역사를 통해 차별의 아픔을 알고 있는 한국이기에 더더욱 이 문제를 좌시해선 안 된다. 백인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흑인이나 동남아인들을 무시하는 무의식적인 태도를 우리가 ‘의식적으로’ 먼저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먹이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이 저지른 인종차별의 크기만큼, 한국인이 인종차별을 당하더라도 우리는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 ‘미녀들의 수다’에서 호주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러자 에티오피아 출신의 흑인 메자는 이런 얘기를 했다. 인종차별은 한국에서 특히 심하다고. 면접에서 탈락한 경험, 갑자기 월급이 깎인 아는 언니의 이야기 모두 ‘흑인이어서’ 받은 차별 대우였다.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양 스타벅스를 비난해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메자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과 한국인들은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묻지 않는 ‘남 탓하기’는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