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인데 뭐 그렇게 심각하고 예민하게 구냐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웃자고 하는 소리여도 꼭 다큐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 웃자고 한 소리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고 불편함을 느낄 때, 예능이라는 이름의 면죄부는 통하지 않는다. 최근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tvN <코미디빅리그> ‘아3인’ 팀의 ‘JSA’, 그리고 KBS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 두 코너는 가장 ‘핫’한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불편한 그래서 조금은 ‘후지게’ 느껴지는 콩트다.

아3인, 관객 모욕을 그냥 참으라고?

“터지라우!” 오늘의 ‘핵폭탄’에게 이상준이 명령한다. 즉석에서 아3인 팀에 의해 선정된 오늘의 핵폭탄은 ‘터지는’ 연기를 한다. 북한의 ‘핵폭탄’과 남한의 ‘송이병’으로 지정된 관객은 무대 위로 끌려나와 갑작스레 대결을 펼친다. 이긴 자에게는 선물이 주어지고, 진 사람은 얼굴에 밀가루를 묻히거나 색소가 들어있는 물을 옷에 튀기거나 얼굴에 낙서를 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모욕’을 당한다. (진 사람에게도 코너가 끝나고 선물이 주어진다고는 한다.) ‘관객 모욕’은 아3인의 개그를 끌어나가는 중심축이자 핵심 콘셉트다. 얼떨결에 무대에 올라온 방청객이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나 ‘핵폭탄’과 ‘송이병’이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들은 다른 개그 코너에서 보지 못했던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아3인의 아슬아슬한 ‘관객 모욕’은 때로는 도를 넘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코미디빅리그> 시청자 게시판에 네티즌 ‘kwonsdk’ 씨는 “아무리 관객모독이 컨셉이어도 당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 들지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상대방을 즐겁게 하고 싶다면 최소 상식이라는 선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의견을 남겼다. ‘핵폭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방청객의 외모를 웃음거리로 삼거나, 방청객을 예상하기 쉽지 않은 불편한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것들이 문제가 됐다. 자신을 2월 14일 녹화에서 북한군 ‘핵폭탄’이었다고 밝힌 네티즌 ‘ljk2win’ 씨는 “무대에 올라가긴 했으나 얼굴에 낙서하는 것을 할지는 몰랐다. 그 자리에서 하기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망칠 수 없어 참았다.”고 말하며 제작진에게 모자이크를 처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물론 그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아3인 코너를 2009년 상연돼 호평을 받았던 연극 <관객모독>에 빗댄다. 연극 <관객모독>에서는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욕설을 날리고, 심지어 관객들에게 물을 잔뜩 뿌린다. 연극 관객들이 돈 주고 욕을 먹고 물을 맞아도 항의하지 않는 것처럼, ‘관객 모욕’이 콘셉트인 코너에서 무대에 오른 관객들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극 <관객모독>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연극적, 미적 체험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는 것이지 ‘관객을 모독했다는 것’ 자체가 호평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아3인이 관객을 모욕할 때 관객은 그저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적 존재, 웃음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철저히 대상화된 ‘핵폭탄’과 ‘송이병’은 충분히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 뉴시스


용감한 녀석들, 꼭 ‘된장녀’를 끌어들여야 했나

신보라는 ‘용감한 녀석들’ 중에서도 진정 제일로 용감하다. 박성광과 정태호가 어색한 래핑으로 흥을 돋구는 사이 신보라는 가수에게도 뒤지지 않을 보컬로 좌중을 압도한다. 신보라를 셋 중 가장 용감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무엇을 노래하는지에 존재한다. ‘남자친구 돈으로 신상을 사고, 남자친구에게 모든 계산을 맡기고, 남자친구가 선물을 줄 때만 남자친구를 사랑하는’ 극대화된 된장녀의 이미지가 신보라의 노래에 대입된다. ‘여자친구 쇼핑할 때 6시간 기다려, 여자친구 좋아하는 식스팩을 준비해’ 등 된장녀에 다 맞춰주는 남자가 되라고 명령하는 박성광과 정태호의 랩은 신보라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나 된장녀인데 그래서 어쩌라고’ 외치는 듯한 신보라의 노래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된장녀가 있는 현실의 된장녀를 역설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든, 아니면 아예 여자가 대접받아야 된다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든 된장녀 콘셉트를 차용한 것은 ‘건강한 웃음’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끝이 없는 보물창고인 남녀관계는 웃음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웃음 이면에 ‘된장녀’라는 비현실적이고 현실을 왜곡하는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것 역시 막지 못한다. 이미 수많은 남초사이트에서 반복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된장녀 개념은 용감한 녀석들을 통해 한 번 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그게 실태를 반영하니까 풍자적 요소를 갖췄다고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20대 여자들 다수는 명품백을 좋아하고 군대 간 남자친구를 기다려줄 만한 착한 마음도 없다는 식으로 얘기할 때, 적어도 동시대의 20대의 여성으로써 듣기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 이런 개그가 나올수록, 미디어에서 20대 젊은 여성들의 연애관은 어떻다고 규정짓는 것 같아 불편해요." 대학생 김수정(25) 씨의 뼈 있는 지적이다.

'용감한 녀석들'은 크게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사람들이 쉽게 뱉지 못하는 말을 ‘용감하게 말해주는’ 앞부분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에게 무조건 맞춰줘야 하지만 못 생기면 어차피 안 된다고 말하며 여자 스스로 자신이 된장녀라고 노래하는 뒷부분은 도대체 ‘용감한 녀석들’이라는 코너의 제목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일부 시청자들도 <개그콘서트>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네티즌 'mlp09okn‘ 씨는 “여자한테 차여서 고민인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건 개그가 아니라 가학”이라며 용감한 녀석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네티즌 'pyjun66’ 씨는 “별다른 생각 없이 쓰여진 가사였을지라도 그 메시지가 사람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등 시청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재고해야 한다.”고 의견을 남겼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웃자고 만든 개그에서 어이없는 황당함을 느끼는 경우는 사실 꽤나 흔한 일이다. <개그콘서트> ‘네 가지’의 김준현, ‘불편한 진실’의 황현희는 각각 뚱뚱한 남자, 키 작은 남자라는 신체적 특징을 개그 소재로 이용했다는 혐의로 일부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코미디빅리그>의 옹달샘 팀이 선보였던 코너 ‘옹데어썰’은 얼굴에 먹칠을 해 흑인분장을 함으로써 ‘인종비하’를 했다는 비난에 부딪히기도 했다.

개그와 상식이 엇갈리는 부분에서 생기는 마찰에 대해 누군가는 이런 말을 쉽게 꺼낸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하지만 한 번 전해진 메시지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을 외면하겠다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개그에서든, 드라마에서든, 다큐에서든 마찬가지다. 그렇게 싫으면 안 보면 될 거 아니냐는 일갈은 정말로 '니가 제일 후지다'. 문화 비평이 왜 존재하는지를 망각한 반응이다. <개그콘서트>나 <코미디빅리그>처럼 인기 있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프로그램이 만드는 사회적 의미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 속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용감한 녀석들'을 보지 않는 여성도 된장녀 취급당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다. 

“어떤 메시지도 담지 않았다. 우리는 개그를 한다. 열심히 할테니까 개그를 더 편하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용감한 녀석들’ 팀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지금 한 말, 행동 하나하나는 메시지가 아니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