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영화 혹은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우리는 어느 덧 반전을 기대한다. 표면에 나타나는 이야기를 뒤집어 엎을만한 그런 스토리를 독자들은 원한다.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역시 이러한 반전스토리는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전 스토리는 실제 상황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인기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는 아직도 의문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과 베일에 가려진 진실들에 대해 재연형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래서 시청자로 하여금 “과연 그 사건이 사실일까?” “과연 그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당일 방송이 끝나고 나면 항상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는 방송에서 제기한 “음모론”의 대상과 사건에 대한 검색어로 가득 찬다. 이는 사람들이 음모론에 질색을 하면서도 음모론을 좋아한다는 증거다. 음모론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제 2의 <도가니>로 불렸던 영화 <부러진 화살>이 사실상 종영했다. 일명 “석궁테러사건”이라고도 불렸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 <도가니>에 이어 다시 한 번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 관객 수는 무려 34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흥행했다. 이러한 흥행은 앞서 말한 '음모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도 관계가 있다.  <부러진 화살>과 음모론.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피고 : 제가 쏜 화살은 피해자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부러진 화살은 어디 있으며 피해자의 뚫리지 않은 셔츠 등에 대해 증명할 수 있습니까?
검사 : 잘 모르겠습니다.
판사 : 이미 증거가 충분하므로 피고의 항소는 기각합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녹취록 中-

Ⓒ오마이뉴스


<부러진 화살>의 간략한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주인공 김명호 교수가 교수 재임용건에 대한 항소를 제기하다 부당한 사유로 기각이 되고 만다. 이에 해당 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을 했고 그 과정에서 해당 판사가 김명호 교수가 쏜 화살에 맞았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한 공판을 하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해당 판사가 김명호 교수와 그를 변호해주는 박훈 변호사에서 주장하는 항소를 모조리 기각하는 등 편파적인 재판관의 모습을 보인다. 결국은 그들의 항소는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았다. 이후 그들은 영화를 통해 다시 세상에 알렸고 끝까지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해내려 하고 있다.


●<부러진 화살>은 제 2의 <도가니>로 불렸으면서 왜 도가니가 되지 못한 것인가?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김명호 교수는 영화내용과 실제 사건이 맥락상 100%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법만 믿고 법원에 찾아갔다가 재판 테러를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럼 <부러진 화살>을 본 판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라며 영화의 내용에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음모론을 조장해 자신들의 주장을 무리하게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한 보수 언론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부러진 신뢰>라며 ‘가상이 현실을 뒤흔드는’ 사이버 시대의 슬픈 현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다시피 양측의 입장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려있다. 이는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이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벌써 영화까지 나와서 340만 명이라는 관객 수를 돌파했고 이에 대한 파급효과는 몇 배는 더 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부러진 화살>은 <도가니>처럼 실제 인물이 처벌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1. <부러진 화살>의 처벌의 대상은 처벌을 주는 사법부라는 불편한 진실.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재수사 요청, 재공판 요청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건 사법부다. 실제로 재공판이 이뤄진다고 한들 다시 한 번 김명호 교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거나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에게 대한 명예훼손 고소까지 할 수도 있다. 
 

2. 영화의 내용에 픽션을 가미.

▲포털 사이트에서 “부러진 화살”을 검색하면 “부러진 화살 성폭행”이 2번째 검색창에 뜬다.


극중 김명호 교수가 수감되어 있던 과정에서 남성 재소자로 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직접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이라면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야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는 극중 긴장감을 더욱 조성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인 픽션에 불과했다. 또 이 사건의 담당 취재 여기자가 다른 부처로 쫓겨나는 장면이라거나 알코올중독환자인 변호사 등 실제 사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강력한 비판과 진실 왜곡은 별개의 문제다. 이에 대해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 감독은 왜곡이 아닌 “굴절”이라는 표현을 썼다. 또 석궁테러사건 당시 아파트 경비원의 말을 빌려보면 “판사님은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배를 움켜쥐고 있었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영화 관계자들은 자신에게 당시 상황을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부러진 화살에 피가 안 묻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손으로 배를 가린 채로 씩씩하게 걸어 나온다.

이는 화살을 맞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만약 경비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이 영화가 시작부터 허구가 된다. 이처럼 영화 <부러진 화살>은 맥락상 100%가 일치한다고 하디라도 픽션을 가미한 부분에 있어서는 할 말이 없다. 결정적인 실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34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해 흥행의 선로에 오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큰 화제가 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실을 알리려 한다고 하지만 그 중에 하나라도 픽션이 가미된다면 그렇지 않은 것들마저도 픽션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들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흥미를 끌만한 수식어를 붙이고 근본적으로 오류가 될 만한 부분을 배제해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그들이 겨냥하고 있는 사법부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 영화는 종영했지만 아직 그들의 이야기는 상영 중이다.

<부러진 화살>의 내용은 음모론을 다룬 것이 아니다. 허황된 사실에 관심을 끌기 좋은 거대조직이 배후에 존재한다는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공판에는 큰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러진 화살>은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이 석궁테러사건 자체를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있다. 결국 <부러진 화살>은 제 2의 도가니가 될 수 없었다. 메시지를 보내는 송신자가 매체를 통해 받는 수신자에게 주는 효과가 매우 크다. 이는 과거 황색지(Penny press)나 정치적, 군사적인 선전이 난무하던 시기의 송신자 중심적인 메시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메시지를 받을 수용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파악해서 그들의 메시지에 전혀 문제가 없도록 하지 않도록 전달해야만 그 메시지의 효과는 빛을 발한다. 이에 비해 <부러진 화살>의 메시지 전달 방법은 잘못 되었다. 그들이 진실을 얘기하고자 했다면 진실에 가까운 사실만을 영화화 시켰어야 한다. 영화의 흥행을 위한 픽션 가미와 근본적인 오류에 대한 가능성 배제는 장기적으로 갈수록 점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진실과 사실은 다르다. 진실이 하나의 순수 결정체라고 한다면 사실(Fact)은 그 안에 있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실을 진실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진실은 사실이 될 수 있지만 사실은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다. 앞으로도 <부러진 화살>의 싸움은 계속 된다.  매체의 영향이 강한 현재, 영화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고자 한다면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좀 더 부각시키고 그들을 위협하는 음모론을 불식시켜주길 바란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