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서 발생한 납치 살인사건이 경찰의 부실한 대응으로 확대됐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여성의 신고전화를 받은 112신고센터가 범죄에 노출된 피해자에게 계속해서 주소를 물어보는 등 답답한 응대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신고센터에 근무하던 20 여명의 경찰관 중 어느 누구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이 범죄를 수수방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거기다가 35명이 수사‧탐문했고 피해자가 주소를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등 경찰의 해명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해당 경찰관들의 징계 절차를 밟고 112신고센터의 운영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민들의 경찰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충격을 준 건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이 녹취록을 파악한 게 사건이 일어난 지 엿새가 지나서였다는 것이다. 경찰의 범죄에 대한 인식과 보고체계가 엉망이거나 서 청장의 권위가 보고를 안 해도 될 만큼 약하다는 얘기다. 아마 전자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동료 경찰에게 “부부싸움 같은데”라고 말하는 등 강력범죄가 아니라 가정의 갈등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원중부서 상황관리관도 112신고센터로부터 '코드-1, 성폭행 진행 중'이라는 지령을 받고도 단순 성폭행으로 판단해 현장 경력 추가 배치나 보고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천호 경기경찰청장이 유족과 국민들에게 애도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뉴시스

 

그렇기 때문에 총체적 부실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이다. 피해자의 다급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무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시작이라면 단순 성폭행으로 판단했던 건 중간이자 핵심이다. 물론 제한된 인원으로 모든 성폭력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찰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중요시 되는 건 신고 응대원의 판단력이다. 하지만 경찰은 신고센터에 훈련받지 않은 경찰관을 투입하면서 비극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일상적인 신고 업무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할 수는 있어도 이를 판단하는 일은 그래선 안 되는 법이다. 서천호 청장이 고개 숙이는 것으로 이 사건이 종결되지 않는 이유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청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112 신고센터와 경찰서 상황실 운영체계를 전면 바꿔 나갈 계획”이라고 말한데 대해서도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집회나 시위에서는 영하의 날씨에도 물대포를 쏘던 경찰이 야간이라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한 이유는 뭘까. 혹시 자신들의 진짜 본분은 잊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경찰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며 국민은 그런 경찰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유족들이 “정부에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것”이라 한다. 법적인 판단은 법원에 맡기겠지만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도의적 책임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