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씨가 막 시작되려는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는 당신이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이래봬도 한 학기의 반 가량이 훌쩍 지나버렸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낸 등록금이 한 학기 400만원이라면, 이미 200만원 남짓을 써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업료'라는 명목으로 시급 5000원짜리 아르바이트 800시간을 일해야만 벌 수 있는 돈을 가져가는 대학이 당신에게 선사한 수업은 과연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수강신청 대란으로 원하지도 않았던 과목을 수강해야하는 순간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몇몇 대학의 강의실에서 벌어진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직 수업은 시작도 안했어요"

언론홍보영상학을 전공하는 이화여대 문희정 씨는 매주 화요일 납득가지 않는 휴강을 당해야 했다. 전공 수업 'Media & Social Change' 때문이었다. "첫째 주에는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으로 세 시간 수업 중 몇십분만에 수업을 끝냈어요. 그러더니 교수님께 사정이 생겼다며 그 다음주에 휴강을 하더라고요. 한 번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에도 휴강 통보를 받으니 슬슬 '수업을 하자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3주 내내 제대로 된 수업을 하지도 못하고, 수강생들은 3월의 마지막 주가 다 돼서야 새로운 교수님을 맞게 됐다. 등록금으로 따지면 한 학기 평균 6과목을 듣는 이화여대 사회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380만원 중, 한 과목의 등록금은 63만 3000원이다. 그 중 'Media& Social Change' 수업의 4분의 1을 듣지 못했으니 약 15만원 이상을 허공에 날려버린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수강생은 "새로 온 교수님께 보충 강의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걸 가지고 소송을 걸 수도 없으니 학생들은 항의할 수가 없다"고 했다. 

"3년 전 수업을 듣고 있어요"

취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각 대학에는 '인터넷 강의'가 존재한다. 지난 학기 '국제정치학' 수업을 인터넷 수업으로 수강한 성균관대생 박신영 씨는 "인터넷 강의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성균관대는 '아이캠퍼스'라는 이름의 인터넷 강의를 운영한다. 박 씨에 따르면 성균관대 아이캠퍼스는 수업을 한 번 촬영해놓고, 몇 학기 동안 같은 내용의 수업을 재활용해 사용한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거나 '출석' 버튼만 누르고 수업을 듣지 않는 등의 폐단이 존재하는데도 성균관대는 이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 성균관대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아이캠퍼스를 들으면 돈 내고 학점을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수강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라는 등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작용을 이미 학생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고쳐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예전부터 있어왔는데도 학교 측에서 꿋꿋하게 아이캠퍼스를 운영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양질의 수업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학교가 학생들이 수업을 악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운영하는 것은 "쉽게 돈 벌려고"가 그 목적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수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홍익대에 재학 중인 황보리 씨는 고등학교 때의 주입식 수업에서 벗어나 대학 수업다운 수업을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수강하게 된 수업이 '고전교육세미나'예요. '세미나'라고 해서 수업 내용에 대해 학생들끼리 발제해 토론하는 등 능동적인 수업을 기대했어요." 하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의 '세미나' 수업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랐나보다. "교수님은 세 시간 수업에 효율이 없다며 두 시간으로 수업 시간을 줄이자고 하셨어요." 물론 두 시간동안 진도에 맞춰 수업은 하지만, 교수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두 시간 수업'에 맞춰 수업을 끝내느라 바쁘다고 했다. 중간에 5분 쉬는 것 말고는 쉴 새 없이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다. "오히려 비효율적인 느낌이예요. 수업 내용에 끼어들어 질문이나 논의할 틈은 전혀 없어요. 충분한 이해 없이 진도를 나가다 보니 그 내용을 이해할 수도 없고요. 차라리 '세미나'의 의도에 맞게 학생들이 주도하는 수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지난 3월 16일 고함20 기사 <"어차피 수업도 안할 텐데 왜 가?" 첫째주 수업의 불편한 진실>에서는 한 주에 21만원의 등록금을 내고도 첫째 주에 수업을 빨리 끝냈으면 하는 대학생들의 태도를 꼬집은 바 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려는 준비가 돼있는 학생들에게 가치 없고 성의 없는 수업을 선사하는 학교와 교수의 태도는 누가 꼬집을 것인가? 학점과 졸업장이 필요한 20대들은 불만이 있어도 묵묵히 수업을 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