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로 소중한 것들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 공기, , 햇빛, 바람처럼 꼭 필요하지만 당연하게 여기는 공유재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햇빛은 인간의 정서와 가장 밀접한 요소이다. 일례로 집을 구하러 다녀보면 알 것이다. 똑같은 구조의 집이라도 창문이 있고 없고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난다. 그만큼 창문이 주거환경, 혹은 생활환경에 큰 역할을 한다는 증거다. 그런데 여기, 거의 하루 12시간씩 창문이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햇빛이 그리운 사람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창문이 없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마케팅 상식이다. 창밖의 어둑해진 날을 보고 쇼핑을 급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는 창문이 없다. 철저히 소비자들에게 맞춘 전략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떨까.

한 대형마트 지하의 푸드코트에서 일하는 이정미 씨(48)는 햇빛을 못 보니까 너무 힘들다고 했다. 이 씨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해요. 아침에는 지하철을 타고, 낮 동안은 건물에 갇혀있다 밤이 돼서 퇴근하니 하루 종일 햇빛을 거의 못 보죠.”라며 처음엔 괜찮았는데, 몇 달 동안 이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짜증이 늘어나고 우울한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한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1년 가까이 근무한 적이 있는 정하영 씨(24) 역시 바깥 날씨를 모르니까 축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 일 자체도 힘든데, 그 안에만 갇혀서 바람을 쐬거나 할 수가 없으니까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어요.”라고 답했다.

특히 예민한 사람의 경우, 마트나 백화점 같은 꽉 막힌 공간에서 일하는 것은 고역이다. 마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다 하루 만에 그만뒀다는 김유리 씨(24)저는 원래 밖이 안보이면 답답해서 지하철보다 버스를 이용해요. 그래도 대형마트는 밝고 넓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라는 김 씨는 이어 막상 일을 해보니 밖이 안 보이니까 시간 개념이 없어지고 시간도 더디게 가더라고요. 몸에 힘이 빠지고 곧 쓰러질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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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 못 보는 노동자들의 일조권을 보장하라>

실제로 햇볕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정신과 신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있다. 겨울과 어둠이 많은 북유럽 국가에서 주로 진행된 연구는 불충분한 자연광이 성급함, 피로, 질병, 불면, 의기소침, 알코올 중독, 자살, 기타 다른 정신적 질병에 직접적인 상호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전문가에 따르면 하루 15분에서 30분 정도 주 2-3회 이상 햇볕을 쬐어야 비타민 D가 생성돼 뼈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신찬수 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땡볕을 피해 오전 11시 이전과 오후 4시 이후 15분씩 일주일에 2회 가량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트나 백화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5분도 제대로 햇볕을 보지 못한다. 쉬는 시간에 밖에 나가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정 씨는 점심시간 50, 간식시간 30분이 다에요. 밖에 있는 식당에 가려면 1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고 또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많아서 기다려야 하니까 시간이 아깝죠. 그 시간에 차라리 백화점 안에 있는 식당에서 밥 먹고 더 오래 쉬는 게 나아요.”라고 답했다. 또 그녀는 중간에 손님 없으면 10분 정도 티타임이나 쉬는 시간을 주는데, 다들 다리 아프고 힘드니까 바로 휴게실로 직행하지, 해 보러 가겠다거나 바람 쐬러 가겠다는 사람은 없어요.”라며 너무 짧은 휴식 시간에 햇볕을 쪼일만한 여유는 없다고 했다.

푸드코트의 사정은 더 심했다. 이 씨는 식당에서 일하는데 밖에서 뭘 사먹겠어요? 그냥 여기 메뉴를 먹거나 다른 걸 만들어 먹거나 하는 거죠. 쉬는 시간도 따로 없고 한산할 때 잠깐씩 쉬는 게 전부인데, 그 시간에 밖에 나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라며 근무 중에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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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직원들은 하루 평균 12시간 정도를 근무한다. 휴식시간과 점심시간, 틈틈이 쉬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하루 종일 서서 고객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보여야 하는 고된 업무임은 틀림없다. 서비스업 특성 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그들은 정신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햇빛을 볼 권리마저 빼앗긴 채 일하고 있다.

근무환경이 노동 효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일의 효율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건강을 위해서 최고는 차치하고 최소한의 근무환경은 보장돼야한다. 이를 위해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근로자들이 적어도 15분 정도는 따뜻한 햇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15분의 햇살이 15시간의 피로를 잊게 하는 특효약이 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