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하계 전력수급 대책’을 6월 1일부터 조기시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산업계의 자율적인 동참과 전국민의 절전 생활화를 통해 여름철 전력이 모자랄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전력피크 수요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산업계는 자발적인 휴가기간 분산, 조업시간 조정, 자가 발전기 가동 등을 통해 절전대책에 참여하도록 했다. 거기에 더해 정부는, 전력피크의 21%를 차지하는 ‘냉방부하’를 억제하기 위해 ‘냉방을 제한’하는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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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에 따르면, 백화점, 호텔 등의 대형건물에 대해서는 냉방온도를 26°C로 제한한다. 특히, 공공기관 19,000개소는 전년대비 5%에 해당하는 전기소비 절약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 냉방온도를 28°C로 제한하고 피크시간(14~17시)에는 냉방기를 번갈아가면서 가동 중지하기로 했다. 에너지절약형 의류를 입고, 넥타이를 풀어 더위를 덜 느끼도록 권장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헬게이트가 열렸다. 여름의 무더위를 날려주는 에어컨 바람도 자유롭게 누릴 수 없는,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게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있었던 대규모 정전사태를 막고, 대기전력을 충분하게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전력수요 문제를 근본적으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대책은 없고, 시민들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억지로’ 전기난 문제를 해결하는 급급함만이 남아 있다. 전력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료를 통제한다거나 전력의 효율을 높인다거나 하는 방안은 자취를 감춘 채, 정부는 국민의 희생과 노력만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의 일차원적 문제 해결책 덕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민들이다. '환경을 위해 전기를 아끼자'는 운동이라면 착한 일 하는 기분이라도 들지, '전기가 모자라니 전기를 아끼라'는 강요는 그저 어이가 없는 일이다. 특히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냉방 제한을 더욱 심하게 받는 공공기관의 직원, 이용자들에게는 무슨 죄가 있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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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으로 강요된 인내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은 일은 이미 겨울에도 있었다. 지식경제부의 에너지사용 합리화법 시행령에 따라 난방 역시 제한을 받았던 것이다. 교육용 전기 요금이 60%나 인상되고, 공공기관의 실내 온도가 20℃로 제한되었다. 이를 어길 시에는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마저 부과되었다. 이 정책에 따라 많은 대학에서도 피크타임(오전10~12시, 오후5~7시)의 난방기 가동을 중단하고 개인 전열기를 회수하는 등 ‘전기 절약’으로 절치부심했다. 이로 인해, 올 겨울 계절학기를 수강했거나 도서관을 찾았던 대학생들은 평년에 비해 훨씬 더 극심한 추위에 떨어야했다. 올 1월 <동대신문>을 통해 동국대 시설관리팀 관리자는 “학교 시설은 점점 커지는데, 일률적으로 전력을 10% 감축하라니 난감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올 여름도 기대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출입문을 개방한 채 냉방기를 가동하는 다중이용 시설에 대해서는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는 등 ‘세게’ 나가는 정부의 에너지 사용 제한 정책 하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인가. 에어컨이 있는데 왜 틀지를 못하는 것일까. 정부는 하루빨리 국민들을 괴롭히는 ‘절전의 이데올로기’를 집어치우고, 제대로 된 에너지 수급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