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32주년이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해서 32년 전 광주에서 그런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났는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당했는지 알고 있다. 역사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2007년 흥행에 성공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비롯한 수많은 기록물들과 재구성물들이 이를 깨우쳐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가치가 빛나야 할 5.18 민주화운동의 흔적은 오히려 점점 바래지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숭고함을 잊지 말자'고 주도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앞장서서 민주화 운동을 평가절하하는 아이러니한 태도가 그 주범이다.
 
지난 해 11월 역사 교과서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2013년부터 쓰일 새 역사 교과서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분을 삭제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승만 독재와 5.16 군사정변, 전두환 신군부 정권 등도 삭제하기로 했다. 전라남도와 광주시, 지역 언론의 규탄으로 결국 일주일만에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주요 역사적 사건을 반드시 수록해야 한다는 세부 기준이 나와 사건은 일단락됐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없어서 안될 중요한 획은 정부의 '없애자'는 논의 한 번으로 너무 쉽게 침범당했다. 교과서가 아닌 영화가 5.18.을 가르치는 현실에서 그런 발상을 했다는 교육부의 의식이 불편하다. 교육부의 잘못은 다행히도 정정됐지만 시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역사를 대하는 정부의 미성숙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news1



아픈 역사의 잔해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음에도 마치 '과거의 아픔은 털어버리고 잊어버리자'는 듯한 태도는 부당하다.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 및 피해자들에게는 매년 5월 18일의 형식적인 위로와 사과 그 이상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당시 충격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유공자 대우를 제대로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첫 해를 제외하고 5.18. 기념식에 불참해온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5.18.정신 외면하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뿐 아니다. 5공화국 시절 경호실장은 민주화 유공자로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이명박 정부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기념식에서 사라졌다. 광주 시민들의 수차례에 걸친 요청으로 올해 다시 부를 수 있게 됐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는 시민들이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정부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지난 해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유엔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는 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현재 한국이 이만큼의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되어준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과거를 무시해서는 단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고통의 역사에서 희생당했던 무고한 시민들을 마주하고 성찰하는 태도가 절실하다. 그래야만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진일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