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정문에서 상수동 카페골목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삼거리에 있는 신호등 앞에 서게 된다. 그때 고막을 울리는 재즈음악이 들려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음악이 나오는 쪽을 쳐다보게 된다. 바로 그곳에 ‘레코드 포럼’이 있다. 레코드 포럼은 홍대 앞에서 국내에 잘 들어오지 않는 희귀한 재즈, 월드뮤직 앨범 등을 파는 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95년에 문을 연 이곳은 17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어느새 홍대의 명물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코드포럼은 17일 문을 닫게 되었다. 홍대 인근의 임대료가 치솟는 가운데서도 건물주의 배려로 적은 임대료만 내다가, 건물주가 이번달 초에 건물을 허물게 되었다며 자리를 비워줄 것을 통보했다고 한다.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이곳에는 베니건스가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홍대앞의 지역문화가 대기업 자본에 잠식당하고 있다. 홍대앞의 가장 오래 된 빵집이었던 리치몬드 제과점 자리에는 엔젤리너스 커피점이 들어섰고, 레코드포럼 자리에는 베니건스가 생길 것이다. 홍대앞은 지금도 충분히 대기업 프랜차이즈업체로 가득 차있는 곳인데, 이제는 전통 있고 특색 있는 소규모의 가게를 없애면서까지 자본이 마구잡이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주 나오는 말인 ‘상생경영’이라는 말이 무색하기 짝이 없다. 

리치몬드와 레코드포럼은 '홍대 거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와 같은 곳이었다. 홍대를 들르는 사람들의 오랜 추억이 묻어있고, 그곳의 지역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홍대 거리의 색깔이 묻어나는 독창적인 가게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은, 지역만의 특색과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천편일률화 된 프랜차이즈 업체가 한 지역의 문화를 상징해주는 곳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레코드포럼은 홍대앞 음악 문화의 한 축을 이뤘던 곳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곳이다. 지금은 ‘클럽 문화’로 유명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음악 장르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 홍대앞이다. 수많은 클럽에서는 포크, 락, 힙합, 전자음악, 재즈, 블루스, 월드뮤직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홍대앞의 음악적 다양성은 레코드포럼같이 90년대부터 국내에서 찾을 수 없던 재즈나 월드뮤직 앨범을 들여오는 곳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레코드포럼이 친절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음반을 공급해주는 가게는 아니었다.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놔서 좋은 음악들이 거의 길거리 소음처럼 들리게 한다는 지적도 종종 듣는 곳이었다. 그러나 17년 동안 음악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분명 다른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레코드 가게임은 분명하다. 적어도 대기업 자본의 침범에 밀려나는 식으로 없어질만한 가게는 아니었다.

홍대앞의 클럽들이나 퍼플, 미화당 같이 인디 음악을 취급하는 레코드점들도 언제 대기업 자본의 침투에 의해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레코드포럼의 폐점은 단순히 하나의 가게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홍대앞의 고유한 문화가 서서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길한 조짐이다. 홍대앞과 같이 서울에서 가장 개성이 두드러지는 곳에서도, 다른 곳과 똑같은 음악을 듣고, 똑같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자본이 문화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문화를 이끌거나 유지해오고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대기업의 진출 때문에 사라지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해치는 주범이다. 이제는 홍대앞 문화, 그리고 수많은 지역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으로 대기업의 자본으로부터 영세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정부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