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가고 없다. 산 자는 그저 추억하고 그리워할 뿐이다. 부르고 또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순리다. 그저 곱씹고 또 곱씹을 뿐이다. 그게 남겨진 사람들의 운명이다. 

노무현의 인생은 사실, 드라마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상고를 나왔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승률이 좋은 변호사였기에 돈도 많이 벌었지만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를 받아 정치에 입문했고 청문회 스타가 됐지만 3당 합당에 반대하며 궂은 길을 갔다. 3번의 낙선 끝에 종로에서 금뱃지를 달았지만 다시 한 번 부산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의 인생은 드라마였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가 살아온 인생이 극적이었기에, 그가 사랑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강한 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한 자 앞에서 소탈하던 그의 모습을 사랑했다. 경제 수장 정주영 전 회장에게 의회를 바짓저고리로 보냐고 따져묻고, 정치자금법을 잘 모른다는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는 정치자금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국민들이 국가안보를 맡겼겠냐고 따져 물었다. 3당 합당 당시, 유일하게 반대한 한 사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가 명패를 집어 던지며 분노할 때 알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강한 자에게 강하게 나가는 일이었고, 그것은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에선 절대 일어나지 않는 꿈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당당함을 사랑했다.

연합뉴스


사람들은 또한 그의 바보 같은 면을 사랑했다. 13대 총선 당시 자신이 태어난 부산 남구에서 출마하지 않았다. 굳이 부산 동구로 출마해 5공 실세였던 허삼수 의원과 격돌했다. 국민을 위해 출마한 이상 5공의 실세와 붙어야 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가만히 있었으면 보장받을 정치 인생, 3당 합당에 반대해 그 당시 대세였던 김영삼 총재와 척을 졌다. 그 이후 이어진 낙선 행렬. 14, 15대 총선 낙선. 부산시장 선거 낙선. 그 이듬해 종로 보궐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16대 총선에 다시 부산에서 낙선. 그는 말 그대로 지역주의를 향해 돌직구를 던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바보처럼 타협하지 않는 자세. 그 역시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바보 같은 면을 사랑했다.

결국, 사람들은 그가 모두가 되고 싶었지만 누구도 되지 못했던 인물이었기에 사랑했다. 그는 분명 일반 사람들과 동떨어진 존재였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화려하지 않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는 친근하고 소탈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그를 친한 친구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는 이제 없다. 모두의 사랑을 뒤로 하고 떠났다. 벌써, 3년이다. 그는 유서에서 미안해하지 마라.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고 말했다. 남은 자들은 그의 말을 들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매년 그랬듯이 미안해하고 원망할 테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운명을 바꿔보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할 테다. 그가 물려주기로 약속했던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 착한 사람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은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당당하고 바보같았던 그가 아직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아직 노무현을 떠나 보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