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권도 없으면서…
 

2002년 겨울, 내 관심사는 온통 대선에 쏠려있었다. 16살, 어렸지만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만은 굳건했던 때었다. ‘노무현 열풍’은 나를 정치적으로 각성시켰고,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때부터 나는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무엇이 옳은 정치적 사고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상만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변하고 있었다.

노무현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지지한 정치인이었다.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인터넷에서 그의 연설 동영상을 찾아보고, 노사모 게시판에서 그를 지지하는 글을 수도 없이 읽다보니 자연스레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Radio Roh' (노무현 라디오 방송) 를 들으면서 노무현 지지자들끼리의 모종의 동지 의식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했다. 요즘에 나꼼수를 들으면서 반MB 의식을 공유하고 키워나가는 것을 보면, 내가 조금 빨랐다는 생각도 든다.

정몽준과의 단일화에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단일화가 정몽준에 의해 번복된 것에 대해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노무현의 당선은 내게 간절한 희망사항이었다. 정의로운 사회와 빈부격차의 해소를 위해, 서민을 위할 것 같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내 생각이었다. 다행히 어린나이에 좌절을 맛보진 않았다. 선거날 6시에 나온 TV 출구조사를 보고 나는 껑충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옆에 있던 한나라당 지지자인 아버지가 눈을 흘겨보든 말든 그저 좋았다. 노무현 당선이라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주변 친구들과는 맥주는커녕 축하 음료수조차 마시기 힘들었으므로, 나는 그 날도 방안에 들어가 ‘Radio Roh’를 들으며 승리의 기쁨을 청취자들과 함께 나눴던 기억이 난다.
 

선거 전날, 노사모 게시판에 내가 직접 올린 글.




참여정부 5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대선 이후로 나는 노무현에 대한 기대를 금방 접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 때문인지, 아니면 ‘검사와의 대화’처럼 그의 파격이 내심 거슬렸는지는 알 수 없다. 아니면 이성에 막 관심을 갖게 되어서 정치와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게 된 것 일수도 있다. 그렇게 노무현을 잊고 살던 중 황당한 일이 생긴다. 바로 탄핵이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탄핵을 시키다니…’가 다수의 여론이었고, 2002년때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다시 국회 앞으로 촛불을 들고 나온다. 결국 역풍을 맞은 야당은 참패를 했으며,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얻는다. 그리고 헌재의 탄핵 심판 발표가 있던 날 학교에 있던 나는, 교실에 있는 라디오를 켜고 헌법재판소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다행히 탄핵안이 기각되었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노무현에 대한 애정은 예전 같지 않았다.

당장 닥친 입시공부에 바빴을 뿐더러, 간간히 보는 신문에도 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보수 언론은 보수 언론의 프레임 안에서 욕하기 바빴고, 진보 언론은 파병, FTA 추진 등에 대해서 노무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었다. 부동산 값은 슬슬 오르고 있었고, 반대로 그의 지지도는 떨어져갔으며, 댓글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유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씁쓸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다만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가 추진하는 정책에 따라 내 삶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실감할 수 있었다. 대학을 법학과로 진학했던 나는, 학교에 로스쿨이 생기는 바람에 다니던 학부가 폐지 수순을 밟아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후배도 08학번 까지만 받게 되었다.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복무기간 단축을 추진해서 1개월 정도 군복무를 ‘덜’ 하게 된 점은 다행스러웠다. 그가 사는 청와대의 외곽 경비를 맡는 전경으로 배치 받은 것도 참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미미한 삶의 변화만 이끌어냈을 뿐, 사회 전체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회에 만연하던 권위주의가 약간 해소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노무현 시대가 흘러갔다.

 


 

노무현의 죽음, 그 이후
 

2009년도, 노무현이 검찰수사를 받으러 온 것은 너무나 비참한 광경이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노무현이었다. 사람들이 ‘도덕성’을 믿고 대통령을 뽑아준 사람이었다, 그가 기업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에 온 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를 비난했다.

명예를 지키고 싶어서였을까? 인간적인 고통이 심해서였을까?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아직도 기억한다. 토요일 아침 세상모르고 자던 중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는데,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텔레비전을 켜고 멍하니 앉아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날씨는 슬프게도 참 맑았다. 그렇게 1주일이 흐르고 참던 눈물을, 노제를 보면서 한 방울 뚝 흘렸다. ‘인간 노무현’을 보내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노무현이 죽은 이후, 정치권에서 틈만 나면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민주당과 참여당은 ‘노무현 정신’을 강조하며, 소위 ‘관장사’하면서 표를 얻고 있었고, 노무현 지지자들은 ‘나꼼수’를 중심으로 이명박의 가장 큰 안티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반해 우익들은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희화화시키고 깎아내리기 급급했으며, 심지어 ‘FTA는 노무현 정부에서 먼저 추진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국회에서의 날치기까지 옹호하는 뻔뻔함을 보여줬다.

그뿐인가, 곽노현 지지자들은 노무현의 경우를 예로 들며, ‘이번엔 지켜줘야 한다’면서 무조건 곽노현에게는 죄가 없다고 우겼다. 심지어 이정희는 통합진보당 경선부정 사태가 일어났을때 자신의 처지를 노무현에 비교하기까지 했다. 노무현이 빠지는 곳이 없었다. 사실 노무현이 이미 정치권에서 가장 큰 ‘상징’이 된만큼, 그 상징을 끌어안는 자와, 공격하는 자들은 노무현의 죽음 이후 3년 내내 있어왔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함부로 떠들어대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다.



노무현 정신을 넘어서
 

사실 나는 노무현의 죽음 이후, 노무현 정부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훨씬 많이 접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이 강했고, 반노동적인 정부였다. 노동계급을 외면하고, 그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지 않을 뿐더러, 노동자가 자살했을 때 노무현 스스로 “죽음으로 투쟁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또한 대추리에 군대를 투입하고, 농민집회때 물대포를 쓰고 과격 진압하는 모습은 그가 말하는 ‘소통’이라는 것이 특정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부동산 가격과, 등록금은 해가 갈 수록 높아졌으며, 국가보안법 같은 악법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때도 폐지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바라던 정의로운 사회, 빈익빈 부익부가 사라진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가 살아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최소한 그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야당이 정권교체를 이루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조언을 해줬을 것이다. 분명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인간 노무현이었다면 반성하고 더 나은 비전을 제시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랬더라면 적어도 민주당이 대책 없이 노무현의 이름을 팔아먹으면서, ‘도로 노무현’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영논리와 반동심리로 가득차서 합리적인 판단을 못하는 소위 ‘노빠’들이 이렇게 득세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없다. 결국 남아있는 사람들이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의 반 권위주의, 지역감정 타파에 대한 의지, 대통령이 되기 전, 약자의 편에 섰던 정의감까지 그의 고귀한 정신은 이어받아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복지와 노동정책을 세울 줄 알아야 하며,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속에서도 서민들과 소외계층의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모든 이의 인권을 보장하고, 이명박 정부가 5년 동안 망쳐놓은, 사회 각 부분의 ‘자유’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단순히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 하는 것을 넘어, 다시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도에 나와 같이 노무현을 응원하면서 정치적 의식이 만들어진 청소년들, ‘노무현 키드’는 상당히 많을 것이다. '노무현 키드'들은  노무현이 꿈꾸는 세상에 동감해서 그를 응원했고, '대통령 노무현'은 뭔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실망이 더 컸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져만 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왜 우리가 노무현을 지지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노무현이 못 다 이룬 꿈, 우리가 실현시키면 된다.

그는 ‘사람사는 세상’을 이야기 했다. 부당한 이유로 해고당하지 않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비정규직이나 소수자라고 차별 받지 않고, 부모의 소득에 따라 교육기회가 차이나지 않는 세상. 재벌이 영세상인들의 밥줄을 끊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아마 '사람 사는 세상' 일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을 위해 노무현 정신, 그 이상의 비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 '노무현 키드'의 역할일 것이다. 어쩌면 하늘에 있는 ‘노짱’도 젊은이들이 '노무현 정신'을 넘어서길 바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