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말하는 건축가'를 보고 싶었지만 필자의 게으름으로 인해 극장상영이 끝났다. 아쉬워하던 순간, 대전 시네마테크 까페에서 말하는 건축가를 연장 상영한다는 공지를 봤다. 기간은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뿐이었다.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바로 시네마테크로 향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간혹 정말로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할 때가 있지 않은가? 필자에게 말하는 건축가가 그런 영화였다. 창피한 말이지만 감독도 누군지 모르고 내용도 자세히 몰랐다. 말하는 건축가라는 영화제목이 필자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건축가라고 하면 보여주기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자신의 건축물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가? 건축가가 무슨 말을 할까? 이러한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감상했다.






정기용 건축가가 '보여주기' 위한 건축을 추구했다면, 이런 영화가 상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건축가일까? 영화를 보면 그가 일반건축가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라는 정기용 건축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건축을 예술이나 기술이 아닌 사회적 윤리로 본다. 그에게 건축은 화려하고 아름다움에 치우친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고, 필요를 느낄 수 있는 건축, 개인을 위한 건축이 아닌 공공성이 강조된 건축이다. 그가 공공을 위한 건축을 할 수 있는 바탕은 소통에 있다.

그는 건축을 시작할 때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사람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불편한 게 무엇인지? 이러한 소통을 통해 그는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건축을 만든다. 기적의 도서관, 무주 공공프로젝트의 일환인 지하에 대중목욕탕이 있는 면사무소, 등나무 그늘의 공설운동장과 같은 그의 건축은 그가 말하는 가치관을 보여준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 중)



하지만 그는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더 나아가 자연과도 소통을 나눈다. 인간의 편의성만을 위한 건축이 아닌,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건축을 추구한다.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한다. 소통을 통해 공간을 창출하고 공간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함께 존재한다.

자본주의 시대 건축은 ‘보여주기’라는 가치관이 강하다. 더욱 화려하고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과시적인 소비를 하게 한다. 이러한 가치관에 소통이라는 단어는 낭비에 불과하다. 하물며 사람과의 소통도 못하는데 자연과의 소통이 가능할까? 4대강 사업, 제주 강정마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빌딩, 무리한 토목사업 등 오늘날의 건축은 소통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세상은 인간만이 사는 공간이 아니다. 만물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정기용 건축가가 따뜻하고 위대한 이유는 그가 소통을 중요시 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소통이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공동체와 자연을 포함한다. 더 나아가 소통을 근거로 만든 건축물은 사랑과 감동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정기용 건축가의 가치관이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 할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여러분 감사합니다. 바람, 햇살, 나무가 있어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 그리고 자연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갖고, 그들을 사랑할 줄 아는 건축가. 오늘날 현대사회가 깨달아야 하는 사실이다.

위정자의 일방적인 소통에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대기업은 그들만의 소통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국회의원들은 권력이라는 이름아래 위선적인 소통만 할 뿐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은 "말하는 건축가"와 오버 랩이 된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지인자지 자지자명’ 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남의 마음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아는 자는 현명하다" 라고 노자는 말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에게 필요한 단어가 바로 '소통' 이라는 단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