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 / 크리스토프 샤부테 저

이것은 한 사람에게 일어난 하룻밤 동안의 일을 그린 만화다. 만월이 뜬 밤, 상사의 우편 전달 심부름을 하게 된 에두아르 톨벡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부랑자들에게 쫓기고, 강도 무리에서 도망쳐 나오고, 여자 화물 트럭 운전수에게 봉변을 당할 뻔 하고, 군사 지역 사유지에 잘못 들어가 두들겨 맞는 등 톨벡은 계속 쫓기고 도망친다. 주인공이 겪는 산전수전에도 측은함을 느끼는 독자는 얼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톨벡은 고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톨벡은 사회보장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그는 이주민을 혐오하고, 여성비하적인 농담을 즐기며, 사회보장 서비스를 신청하러 온 사람들과 길거리의 거지를 무시한다. 반면에 직장 상사나 힘이 센 사람 앞에서는 군말도 못한다. 즉,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 앞에 약한 전형적인 인물이다. 또한 톨벡은 대단히 관료적인 인물이다. 그는 하급공무원으로 일하지만 봉사나 친절 정신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정부 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러 온 시민들에게 주인행세를 하며 떵떵거린다. 이 날도 톨벡은 흑인 노인을 세워두고 동료와 저질 농담이나 하고, 상사의 눈치나 보다가 업무 마감 시간이 다됐다며 노인을 돌려보낸다. 3일을 찾아왔다는 노인의 사정에도 아랑곳 않고 소리를 지르던 톨벡은 결국, 인과응보적인 밤을 맞게 되는 것이다.

소리지르는 톨벡 ⓒ만월


이렇게 톨벡의 고약하고 나쁜 성질들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뒤에, 그가 겪게 되는 난처한 상황 들은 독자에게 고소함과 재미를 느끼도록 한 작가의 의도다. 우리 전래동화에서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볼 때 맛보는 후련함을 <만월>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카타르시스가 절정을 맞는 부분은 에두와르 톨벡이 역설적인 입장에 놓일 때다. 그는 부랑자들한테 쫓겨 기차에 무임승차하게 되고, 이런 상황과 이름 때문에 직원에게 외국인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이 때 같은 칸에 있던 할머니의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는 톨벡의 평소 모습과 닮았다. 

이민자로 의심받는 톨벡 ⓒ만월


또 톨벡이 지각을 알리려고 직장에 전화할 때 담당 부서에 연결음만 몇차례 들리다 전화가 끊기는데, 이는 톨벡이 관료적인 구조의 불편을 입는 상징적인 대목이다. 그나저나 ‘담당 부서를 연결한다’며 전화 뺑뺑이를 돌려서 답답한 일은 우리나라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책을 보며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건 톨벡의 모습이 낯이 익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나 거지를 시종일관 무시하고, 힘이 센 사람 앞에서 한마디도 못하다가 뒤에서나 욕지거리를 퍼붓는 모습, 실업수당이나 사회적 약자 보호책이 다 자기가 낸 세금 덕분이라며 우쭐대는 톨벡에게서 나 자신을, 우리를 발견한다.

언제나 뒤에서 욕하는 톨벡 ⓒ만월


사실 톨벡은 아주 악랄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승진을 기대하고, 퇴근 후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이 낙이기도 한 평범한 인물이다. 심지어 톨벡이 가족이 없는 집에 돌아와 혼자 인스턴트 캔수프를 끓여먹을 때는 안된 마음마저 든다. 톨벡은 그 자신도 소시민에, 외로운 존재이면서 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불만과 적개심만 많은 것일까.
 

톨벡의 일상 ⓒ만월


톨벡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면서 동시에 거기서 위안을 얻는 사람이다. 상대적 우월감에 빠져서 편견의 벽만 더욱 굳건하게 쌓아올리고 있는 사람이다. 톨벡은 마지막에 무슬림의 도움으로 자신 동네로 돌아오면서도 고마운 마음은 한치도 없이 “짐 싸서 가족들이랑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막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또 직장에 전화를 걸기 위해 거지에게 동전을 빌리면서도 “인색하게 굴지 말고” 동전을 내놔라 하고 “실업 수당은 우리 세금, 내가 낸 돈”이니 “뼈 빠지게 일을 하든지! 게을러터진 놈!!”이라고 욕을 퍼붓는다.

은혜를 막말로 갚는 톨벡 ⓒ만월

그렇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톨벡은 달라지지 않는다. 톨벡은 이미 바뀔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하룻밤의 일로 톨벡이 변하지 않듯이, 한권의 만화로 사람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는 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 편견이라는 벽이 그렇게 단단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주민이나 거지 등 사회적 약자를 보면서 불쾌함과 불편함, 경계심과 채무감 등 복잡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사람이라면 <만월>을 통해서 그런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