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4일, 서강대학교 축제에서 ‘프리마켓’이 열렸다. 의류와 액세서리, 책과 음반 등을 팔아 수익의 일부를 북아현동 강제 철거 주민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로 진행된 행사에는 서강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외부인들로 하루 종일 북적였다. 이런 이색적인 행사를 기획한 이들이 누구일까.
 

프리랜서들의 프로젝트 그룹, 노코멘트

‘노코멘트’가 바로 그들이다. 이 이름을 지은 고영철(트위터@greeneyeskaze) 씨는 대학교 때부터 쭉 기획 일을 해온 프로 기획자다. 책, 단편영화, 웹툰, 신진 예술가 데뷔전 등을 수차례 기획해왔으며 SIFE(세계대학경제동아리)의 창단 멤버이기도 한 그는 현재 영등포 하자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그를 비롯하여 공연기획자 유병주씨, 전 ‘김여진과 날라리들’ 활동 멤버 김호규씨, 번역가 펭귄(가칭)씨가 고정 기획자이자 상시 스텝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 모두 각자 자신의 일을 하지만, 특별히 이 그룹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기적으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서강대 축제에서 처음 시도한 프리마켓은 홍대와 이태원, 연남동 등지의 소자본 예술가들이 상품을 홍보하는 동시에 수익금의 20%를 기부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소비자들이 개성 있는 물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자, 판매금의 일부가 기부되기 때문에 셀러와 바이어 모두에게 일석이조. 그런데 프리마켓이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된 계기이긴 해도 일회성 이벤트였을 뿐, 노코멘트의 꾸준한 활동을 소개하기에는 부족하다. 정작 이들이 중점적으로 기획하는 것은 다름 아닌 ‘보따리 바자회’다.

노코멘트를 대변하는 이름, 보따리 바자회

보따리 바자회는 기부자들이 한 보따리씩 물품을 들고 오는 것에서 착안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매월 1회 진행되고 있다. 바자회가 처음 기획된 계기는 사진가 박정근(25)씨 구속 사건이다. 그는 지난 1월, 북한 체제를 선동하였다는 혐의로 지난 1월 수감된 바 있다. 친구를 돕겠다는 일념으로 영치금 후원 결심을 한 것이 보따리 바자회의 시작. 뮤지션 요조 씨의 작명으로 열린 “농담도 못하는 바자회”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포스트 조회수가 1만을 넘었고, 200명 이상이 참가하여 순수익도 300만원 이상 났다. 큰 관심을 받고 나니 도울 곳이 많이 보였고, 한 번에서 끝내지 말고 계속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3월에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위한 “구럼비, 우다(제주도 사투리로 ‘내 이름은 구럼비’, 환경운동가 엔지 젤터의 말로 유명하다)”, 4월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위한 “remember them-그들을 기억하라”, 5월에는 북아현동 강제 철거민을 위한 “예고된 미래”가 개최되었다. 이번 달 24일에 열린 바자회는 “두물머리무릎발: 다시 두물머리로”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4대강 사업으로 생계 터전을 잃고, 농사를 계속 짓는다는 이유로 벌금형까지 선고받은 두물머리 농민 가족을 후원하는 바자회다.
   
지난 19일, 양평군을 상대로 한 가처분 재판에서 다행히 농민 측이 승소하여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공사금지는 두물머리 외곽에만 해당되므로 아직 농업 재개가 어렵고, 책임 주체인 건설회사 측에서 발뺌을 하고 있어 생계가 위태로운 실정이다. 노코멘트 측에서는 이들을 돕는다는 정당성과 시의성을 확보하고, 홍대 2번 출구 가톨릭청년회관 1층 카페 안젤로에서 잔치와도 같은 바자회를 벌였다.
 

여러 마리 토끼 잡기 : 합리적 쇼핑, 기부, 소자본 경제 활성화
   
보따리바자회는 그 자체로 ‘기부’다. 먼저 기획자들은 한 달에 기꺼이 하루를 기부하여 바자회를 운영하고 있다(이유는 ‘재미있으니까’). 물건을 내놓는 사람과 사는 사람도 기부자가 된다. 노코멘트가 선정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상품 판매 총 금액이 보내지기 때문이다.
   
바자회 후 남은 물품은 대부분 연미동 마포아트센터 뒤편 카페 ‘나무그늘’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가게 ‘소금꽃’으로 보내진다. 100% 기부로 시작해 100% 기부로 끝나는 완벽한 바자회인 것. 쌍차 후원 바자회 이후에는 해고자 대변인 이창근 씨와 금속노조 분들이 방문하여 아이디어를 얻어 가신 뒤 대한문 앞에서 지속적으로 바자회를 열고 있다는 뿌듯한 소식도 들려왔다고 한다.
   
또한 바자회는 합리적 쇼핑과 맞물린다. “새것 사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세상이에요. 그런데 바자회나 벼룩시장에 가면 만 원짜리 한 장으로도 꽤 많이 살 수 있거든요. 적은 돈으로도 썩 괜찮은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니 좋은 반응을 얻는 거라 생각해요. 게다가 쓰지 않는 물건을 한 달에 한 번씩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고영철씨의 말이다.
   
바자회가 자주 열리면 지역 주민 간 소통이 활발해질 뿐만 아니라 소자본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노코멘트의 거점인 홍대를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도 동네의 현안(가령 마을 주변 쪽방촌 후원)으로 바자회를 열고 싶은 것도 이 이유다. 한 번의 바자회로 이처럼 많은 이점이 있으니,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기특한 아이디어인 셈이다.
 

지속가능한 도움과 재미를 지향하는 노코멘트
   
바자회 취지에 공감하고 물건을 내놓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구경 오는 시민들에 의해 꾸려지기 때문에 수익이 많이 남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효리씨의 물품 기부(쌍차), 민주통합당 김진숙 의원의 방문(강정), 만화가 강도하 씨의 친필 만화책 대량 기부(박정근) 등 유명인사의 행보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못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후원을 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며, 그런 의미에서 상시 대여 가능한 공간이 있는지 찾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바자회 날이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물품 기부 및 판매가 이루어진다면 보다 정기적인 후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고영철씨는 “후원금 모금에만 너무 연연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물론 목적이 선한 데 있지만, 재미가 있어야죠. 물건 사지 않아도 구경하면서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자리였으면 해요.” 이 말처럼 이들은 신선한 시도를 구상 중이다. 가령 재미난 물품(바비큐 그릴, 모기장, 효자손 등)을 가져오는 사람들의 인터뷰 코너를 만들까 계획 중이라고. 또한 소설가나 시인의 낭독회, 사인회를 바자회 현장에서 함께 열 생각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관심 있으신 작가 분들, 주저하지 말고 연락 주세요!” 하며 유병주씨가 쾌활하게 웃었다.
   
보따리바자회 말고도 다른 흥미로운 기획들도 여럿 있다. 11월에는 윤영배 씨(이발사) 단독 공연을 기획 준비 중이며, 지난 17일에는 “서교동 피크닉마켓”을 열었다. 피크닉마켓은 ‘소풍+프리마켓’ 개념으로, 정원이 딸린 갤러리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핸드메이드, 빈티지 잡화 등을 사고팔고(셀러들에게는 참가비 명목으로 소정의 금액을 걷었다) 저녁에는 함께 영화를 보는 자리라고 한다. 돈을 많이 안 들이고도 유쾌한 사람들과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보따리바자회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세상의 부당한 것들과 싸우는 곳을 후원합니다.” 그 뒷말은 ‘여러분이 기부해주신 물품으로 진행됩니다.’ 그만큼 일반 시민들, 우리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품을 기부하지 않더라도 입소문내주는 것이 온라인 상으로만 홍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재미있고도 유익한 기획들을 ‘보따리째’ 끌어안고 있는 기획 그룹, 코멘트할 거리가 참 많은 ‘노코멘트’의 앞으로의 발걸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