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Trend E 채널의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 <에이핑크 뉴스 시즌3>가 첫 방송을 내보냈다. 주인공인 걸그룹 에이핑크 멤버들은 지난 시즌에서 만큼이나 활달한데다가 살짝은 정신 나간 것 같은 모습을 드러내 ‘빅재미’를 만들어냈다. 멤버들이 직접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콘셉트를 차용한 이번 시즌의 첫 회 아이템은 PD, 작가 등 역할 선정하기, 리더 박초롱의 도로주행 운전연습, 그리고! 깔끔한 숙소로의 대변신을 위한 숙소 상황 체크였다. 에이핑크의 가장 은밀한 공간에 방송 제작진들이 '공식적으로' 잠입한 것이다. 카메라는 에이핑크 숙소 이곳저곳을 훑으며 멤버들의 소지품들과 숙소 곳곳의 깨끗하지 못한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줬다. 프로그램을 보는 우리는 그 상황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리얼리티의 범람 - 아이돌, 나만의 공간을 잃어버리다

우리에게 집은, 그리고 내 방은 나만의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야 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편안하다 못해 민망한 차림이라도, 가족에게도 보여주기 민망한 수준의 쌩얼이라도 ‘내 방’ 안에서는 괜찮다. 코를 파거나 등을 벅벅 긁거나 방귀를 ‘뿡’ 뀌거나 해도 상관이 없는 곳이 바로 방 안이다. 그런데 그 방 안에 나를 24시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가 설치된다면?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방송을 통해 방송된다면? 끔찍한 일이다. 이러한 일들이 2012년의 아이돌에게 매우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 Trend E



아이돌 리얼리티는 200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음악 시장을 아이돌이 장악해버리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친 새로운 장르다. 현재 국내 최고 아이돌로 손꼽히는 원더걸스(MTV 원더걸스), 소녀시대(Mnet 소녀학교에가다), 빅뱅(Mnet 리얼다큐빅뱅), 2NE1(Mnet 2NE1 TV) 등은 모두 자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데뷔 전에 방영하며 팬덤을 확보한 상태로 첫 음원을 발표했다. 특히 2009년 Mnet을 통해 방송된 <2NE1 TV>와 <2PM의 와일드 바니>가 시청률과 파급력 면에서 기록적인 성공을 기록하면서, 아이돌과 리얼리티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이고 만다.

방송 편성을 따낼 수 없는 수준의 소형 기획사 소속이 아닌 모든 아이돌들은 한두 번쯤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잠드는 침대를, 자신의 이 닦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경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만 해도 M.I.B(Mnet W사관학교), 인피니트(Mnet 서열왕), 헬로비너스(MBC Music 비너스의 탄생), 에이핑크(trendE 에이핑크뉴스), 마이네임·비투비·JJ프로젝트·빅스(SBS MTV 다이어리) 등의 신인급 아이돌들이 케이블 채널들을 자신들의 일상을 무기로 점령하고 있다. 너무도 넘쳐나고 흔하기 때문인지, 더 이상 우리는 아이돌들의 숙소에 카메라가 설치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문제가 되기는 하는 것인지를 잊어버린 것만 같다. 아이돌, 그들도 인간이거늘.


입장 바꿔 생각해봐! 정말로 사랑한담 그만 좀 찍어요~♬

사실 아이돌 리얼리티는 재밌다. 내가 좋아하는, 예쁘고 잘생긴 아이돌들이 떼로 몰려나와 재롱을 선보이니 그럴 수밖에. ‘움짤(동영상의 주요장면을 캡쳐해 만든 움직이는 GIF파일)’로 만들고 싶은 장면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에이핑크 뉴스> 첫 회에만 해도, 멤버 손나은이 표정만으로 기상예보를 선보이는 장면이나 앵커와 기자 역할을 한 멤버 김남주와 윤보미가 만담을 주고 받는 장면은 이미 ‘움짤’로 제작돼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떠돌고 있다. 에이핑크의 팬이 봤다면 어떨까, ‘에이핑크 느님’들이 짓는 모든 표정과 하는 모든 행동들을 다 ‘갠소(개인소장)’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이 방송을 만들어내야 하는 아이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은 매우 피곤한 일일 테다. 고정된 다른 스케줄들을 소화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을 언제나 따라다니는 카메라 앞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분량까지 뽑아내야 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방송에 쓸 수는 없으니, 일상을 재미있고 신나고 특별한 것처럼 열심히 포장해내는 게 아이돌들이 출연료를 받는 대가로 수행하는 역할이다. <2NE1 TV>에 등장하는 2NE1 멤버들을 생각해 보자. 정말 시도때도 없이 숙소 거실에서 미친 듯 춤추고 노는 게 그녀들의 일상일까? 정말 박봄은 옥수수를 매일 같이 어두운 방 안에서 몰래 먹으며 실실 거리는 것일까? 산다라 박은 언제나 그렇게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류의 인간인 것일까? 글쎄, 그건 진짜 ‘리얼’ 아이돌이 아니라 우리들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가짜’ 아이돌인 것은 아닐까.

ⓒ MNet



별로 신나지도 않는데 방송 분량을 위해 신나는 척 연기하고, 재밌는 방송을 위해 쇼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과한 스케줄에 지쳐 힘들 때도 카메라 앞에서 생글거리면서 카메라에 대고 혼자서 조잘거리고, 잠들기 전에도 자기 방 안에 있을 때도 저기 달린 카메라가 지금 켜져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만 한다. 아이돌의 일상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적인 대중의 욕구와 리얼리티에 대한 성찰 없는 방송계의 갈망이 만들어낸 3세대 아이돌의 현실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이 리얼리티를 계속해서 찍고, 더 깊은 내면을 카메라 앞에 드러내게 하고,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우리가 아이돌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