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안녕하세요. 지하철 온도가 덥다고 할 땐 안 틀어주더니 오늘은 별로 안 더운 것 같은데 에어컨이 빵빵해 춥기까지 하네요.」
 
「시장님 4호선 너무 더워요. 아침하고 저녁에 타고 오면서 땀 많이 흘렸어요. 시원하게 좀 해주세요.」 
 
「시장님, 버스, 택시, 지하철에서 에어컨 사용도 단속해 주세요. 얼어 죽을 것 같은 버스나 지하철이 넘 많아요.」
 
「상대적으로 사람이 많이 타는 구간에는 냉방을 더 하고, 그렇지 않은 구간엔 26도로 맞추는게 어떨까요? 사당-삼성 구간 너무 더워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6월 무더위였다. ‘소통 행정’ 박원순 시장의 트위터에도 서울지하철 냉방에 대한 민원글이 줄지어 올랐다. 체감 온도는 사실 주관적인 문제다. 끊임없이 ‘춥다’ 또는 ‘덥다’를 호소하는 민원 트윗 앞에서 박시장은 “같은 온도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다르니 고민입니다” “어느 말씀에 맞춰야 할지?” 라며 곤혹스런 심경을 드러냈다. 

현재 서울지하철 냉방 관리 지침은 매우 단순하다. 실외온도가 섭씨 26도 이상일 때 냉방을 가동하라는 지침이 전부다. 실제 운용은 26도를 기준 체감온도로 삼아 강냉과 약냉을 임의로 조절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1,3,4호선은 4,7번째 차량을 약냉방칸으로 지정해 기준 온도보다 2도 높은 28도로 유지하고 있다. 세부 사항이 상당부분 재량에 맡겨져 있다 보니, 민원실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소위 목소리 큰 사람들이 해달라는 대로 온도가 오락가락하기 일쑤다. 명확하고 일관된 지침이 없으니 상충하는 불만을 조율할 수 없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냉난방 민원으로만 7만 6,181건의 민원을 접수했다. 지난 한달 동안 냉방관련으로만 7,753건의 민원이 쏟아졌다. (동아일보 5월 28일자) 문제는 전동차 뿐이 아니다. 전동차를 기다리거나 환승을 위해 불가피하게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는 역사의 실내 온도 역시 시민들이 고질적으로 지적하는 불편사항이다.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1~4호선의 연간전력사용량은 7억8천4백만kW에 달한다. 이중 냉방 등 부대용으로 사용되는 전력량은 연간사용량의 34%인 2억6천만kW이다. 고리 1호기 원전 설비 용량이 587,000kW라 하니 쾌적한 온도를 위해 연간 원전 400개의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는 셈이다. 이 와중 오락가락하는 냉방은 에너지 사용 효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해외의 사례는 어떨까. 런던, 뉴욕과 같은 ‘원조’ 지하철들에게 냉방 문제는 훨씬 까다로운 난제다. 20세기 초 건설된 지하 공간이라 전기에 의존하는 현대화된 냉방 설비를 설치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런던 지하철의 경우 2016년에야 전 차량의 40%만이 냉방시설을 갖추게 된다. 한여름에는 역사 온도가 최고 46도까지 치솟지만 환기용 팬을 돌리거나 지하수 냉각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이 고작이다. 뉴욕 지하철의 경우에도 35도에 달하는 실내 온도를 환기 팬으로 대처하는 실정이다. 흥미롭게도, 서울 지하철과 비슷한 시기인 1976년에 개장한 워싱턴 지하철은 처음부터 공간을 이례적으로 깊게 파고, 지하수 냉각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브레이크 마찰열을 수집해 재활용하는 등 냉방의 전력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설계를 차용했다. 

(사진 출처: 기사 <Does the New York Subway System Really Need to Be This Hot?>)

 

지난해 여름부터 불거진 전력 수급난은 지하철 냉방에도 어김없이 영향을 끼쳤다. “에너지 절약을 위한다고 냉방기준을 올려 열차 안도 시원하지 않다, 이래서 차 몰고 나서게 하면 에너지 절약이 될까(네티즌 jestwitt)” “아침 출근 지하철까지 정부정책에 의한 냉방온도제한을 하면 어쩌자는 건지(네티즌 NrJoo)” 라며 정부 측의 일방적인 온도 정책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인터넷 여론의 다수를 이뤘다. 그러나 네티즌 theathea82씨는 “온도를 몇 도 이하로 못 내리게 하는 기준과 온도 센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네티즌 ennnus씨는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는 냉방 작동을 자제해야 한다, 그 전에 시민의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며 참을성이 부족한 일부 시민의 행동을 꼬집었다. 
 
서울 지하철 시스템은 수송량 기준 세계 3위, 일수입 기준 세계 4위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적으로도 그 운영 효율성과 편의성에 대해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지하철 시스템에 반했다는 한 외국인이 만든 자작곡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물론 서울 지하철의 위상이 아무리 높더라도 그것만으로 서울 시민이 당면한 불편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당장 냉방 문제만 하더라도 현재의 서울 지하철에 개선할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개선 방식이 ‘고객 서비스 정신’을 엉뚱하게 받아들인 무원칙과 재량, 그에 따른 무제한의 전력 의존으로 흘러서는 안될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의견 수렴과 위로부터의 권위 있는 지침이 혼합된 가이드라인을 마련, 엄격하게 집행하는 동시에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